[이소영의 건강&생활] 행복의 조건
작성 : 2025년 05월 14일(수) 02:00
[한라일보] 사람은 단 한 순간도 혼자가 아니며, 홀로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에게 외롭다는 감정은 다만 스쳐 지나는 느낌이 아니라 생존에 위협을 뜻하는, 진화론적으로도 중요한 기본 감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중요한 정도에 비해 외로움은 정신 의학 영역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우울, 불안, 공포와 같은 감정들이 질병으로 분류되는 동안 외로움은 병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상태로 여겨졌고, 근본적으로 병의 진단과 치료를 목표로 하는 의학의 특성상 외로움은 오랫동안 관심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외로움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회가 도시화·고령화되면서 단절된 인간 관계가 문제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디지털 혁명이 불을 붙였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시간을 온 인류가 함께 겪으며 외로움은 시대적 문제로 대두됐다. 아닌 게 아니라 외로움은 우울증, 불안 장애와 같은 정신과 질환들과 큰 관련이 있고, 치매를 일으킬 가능성을 높이고, 심장 질환 같은 신체적 질병을 일으킬 확률마저 높인다고 한다.

도대체 외로움이 무엇이길래? 외로움은 인간관계에 관한 주관적 느낌이다. 인간관계가 많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외로울 확률이 적어지지만, 또 항상 그렇지는 않다. 관계 속에서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과 친구가 몇 안 되는데도 그 안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인간관계의 개수나 빈도와 상관없이 '외롭다'는 주관적 느낌 자체가 앞서 이야기한 모든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의 반대말은 '좋은' 인간관계다. '많은' 인간관계가 아닌, 적은 수 일지언정 베풀고 의지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또한 그 관계가 반드시 대단히 정서적으로 깊은 교류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길이나 대중교통에서 마주친 타인과 아주 짧게 나누는 인사나 잡담 정도라도, 호의적으로 건네는 한 두 마디가 '좋은' 인간 관계의 예가 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행복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하버드 연구는 1930년대 하버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돼 이들을 무려 80년 넘게 추적 관찰해 행복에 관한 결론들을 도출해 냈다. 이 연구가 밝혀낸 좋은 인생, 행복한 삶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돈도, 명예도, 어떤 빼어난 유전자도 아닌, 바로 좋은 인간관계였다.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더 오래 살았다.

필자도 또래의 여느 누군가처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환자 진료 시간에 쫓기고 연구 진행 상황 등을 고민하다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가족, 친구, 동료들과 이웃들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해진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논문 몇 편이 아닌 사람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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