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한반도는 언어가 달랐다
[한라일보] 송악산으로 알려져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오름으로 바닷가로 돌출했다. 높이 104m, 둘레 3115m다. 흥미를 끄는 것은 지역에서는 이 오름을 절울이 또는 저별이악(貯別伊岳)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이 오름의 옛 이름은 뎌리벼리→져리벼리→저리벼리 순으로 파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급하면, 오늘날 절울이라는 이름은 어느 옛날에는 뎌리벼리라 했다.
세종실록에 저리별이(貯里別伊), 1503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송악산(松岳山), 송악(松岳) 등으로 기록됐다. 많은 문헌에 송악산이라는 명칭으로 나오거나, 저리별이(貯里別伊), 저별리(貯別利), 저별리(貯別里), 저성(貯星), 저별악(貯別岳), 저별봉(貯別峰) 등으로 표기됐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송악산 혹은 '뎌리벼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절울이'와 '저별이악'이라는 지명에 대해 '뎌리벼리'의 '뎌리'가 '절'로 변하고, '벼리'가 '우리·워리'로 변한 것으로 본다는 견해가 있다. '절울이'라고 하는 이 오름의 별칭에 대한 세간의 설명, 예를 들면 제주말로 물결 또는 파도를 절이라고 하는데 이 절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혀 우레같이 울린다는 뜻이라는 내용은 신빙성이 적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절(파도)과 관련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맞는 견해라고 본다. 그러나 '뎌리벼리'의 '뎌리'가 '절'로 변한 건 맞지만 '벼리'가 '우리·워리'로 변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절+별+울' 즉, '절별울'을 '저리+벼리+우리'라 했던 것이고, 이것이 너무 길어지니 '벼리'를 생략하여 '절울이', 축약한 형태인 '저별이악'이라 한 것이다. '저리+벼리+우리' 같은 발음 현상은 제주 고어가 개음절 언어였으며, 이는 육지와 언어가 달랐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절’, 벼랑을 지시하는 순우리말
문제는 전통적으로 이 오름을 '뎌리벼리'라 했는가 아니면 '뎌리벼리오름'이라 했는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세종실록에 '저리별이(貯里別伊)'라고 했다든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저별리'(貯別利), 송악(松岳), 1602년 남사록 등에 '저별리'(貯別里)라고 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아무래도 '오름', '악', '봉', '산'과 같은 지명소 없이 그냥 '뎌리벼리'라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뎌리'가 '절'로 변하고, '벼리'가 '우리', '워리'로 변해 '절울이'가 됐을까?
오늘날 '절'로 발음하는 것은 중세국어에선 '뎔'이었으므로 '뎌리'가 '절'로 변했다는 견해에는 이견이 없다. 이런 음운변화를 구개음화 현상이라 한다. 이것이 축약되면서 '절'로 변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럼 '벼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벼라' 즉, '벼랑의 의미다. 벼랑의 중세어가 '벼라'다. 다만 이 오름 이름에선 이 부분을 '벨이' 또는 '베리'(別, 별)로 축약되고 곳, 장소 등을 나타내는 접미사 이(伊), 또는 리(利·里)를 덧붙여 '오름'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럼 '뎔'이란 무엇일까? 1459년 편찬한 월인석보에는 지금의 절(寺)을 '뎔'로, 1481년 두시언해에는 '졀'로 나온다. 그러니 거의 동시대에 같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굳이 선후를 배열하자면 '뎔'이 '졀'보다 조상형이다. 이 '뎔'의 뜻은 무엇인가. '벼리'가 '벼랑으로 된 오름'의 뜻이므로 이를 수식하는 뜻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합치되는 용례는 찾을 수 없다. 다만 '뎔' 또는 '졀'이 발음하는 글자를 찾아보면 절(節)과 절(絶)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절(節)은 훈몽자회에 '마되 졀'로 나온다. 그런데 이 글자의 뜻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는 '높고 험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져리벼리'의 '져리'는 '높고 험한 벼랑으로 된 오름'의 뜻이 된다.
송악산, ‘좁고 작은 오름’이란 뜻
'절(絶)'이라는 글자에도 '매우', '몹시', '심히', '극히' 등의 뜻이 들어있다. '져리벼리'의 '뎌리'가 이 글자가 갖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면 '매우 심한 벼랑으로 된 오름'의 뜻이 되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해석하지 않더라도 이 글자는 절벽(絶壁)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절벽이란 '바위가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뎌리벼리'는 '바위가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로 된 오름'의 뜻이 된다.
사실 이들 절(節)과 절(絶), 이 '절'이라는 발음은 그 자체로 벼랑을 지시하는 순우리말이다. 역시 지금은 잊힌 화석어가 됐다. 절벽(絶壁)이란 뜻으로 돌궐어계 언어집단의 유산이다. 한자 말에 함몰돼 순우리말 '절'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절울이'는 쉽게 풀린다. 앞서 '뎌리벼리'가 '바위가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로 된 오름'이라고 풀었다. 여기서 '뎌리'는 '절'로 변음하고 그 뜻은 '험한 낭떠러지'라는 뜻이므로 '울이'는 당연히 '오름'에 대응하게 된다. '울이'는 '울'에 '이'라는 접미사가 덧붙은 것이다. 산을 뜻하는 '올'이 '울'로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절울이'는 당연히 '험한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오름'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결국 '뎌리벼리'는 '높고 험한 벼랑으로 된 오름' 또는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바위가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로 된 오름'라는 뜻이다. 또한 '절울이'는 '뎌리'가 '절'로 변하고, '벼리'가 '우리', '워리'로 변한 것도 아니고, 파도를 의미하는 '절'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쳐 우레같이 울린다는 뜻도 아닌 '험한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오름'이라는 뜻이다.
한편, 송악산이란 '좁고 작은 오름'이란 뜻이다. 가까운 산방산의 대비지명이다. 이 부분은 송당오름 편을 참조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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