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림의 현장시선] 차 없는 거리 행사와 고도 제한 완화의 모순
작성 : 2025년 05월 02일(금) 01:00
[한라일보] 지난 주말에 제주시 원도심에서 차 없는 거리 행사가 열렸다. 개막 행사장인 탑동 광장은 소음으로 가득 찼고 신청자를 미리 모집한 특별 이벤트 참가자들이 집결 장소를 찾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이벤트의 일환으로 원도심 답사 코스 중 하나를 맡아달라는 요청에 의해 필자는 '기억의 현장에서 도시의 미래를 보다'를 주제로 진행했다. 애초 신청자 반 이상이 찾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토박이로서 원도심 이야기를 풀어냈고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우선, 제주도는 무슨 생각으로 많은 돈을 들이면서 시끌벅적한 이 행사를 했을까. 원도심 살리기를 한다는 명분으로 했다지만 도지사는 탄소중립을 외치면서 마치 큰 업적인 양 홍보했다. 차로 이동해서 행사장으로 온 사람들이 원도심을 한 시간 남짓 걸었을 뿐이다. 매일 차 없는 거리로 만들 생각은 아예 없는 모양이다. 원도심 활성화와 상권 살리기를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방법 아닌가.
제주시 원도심 인구가 왜 계속 줄고 있는지 제주도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행사 한 번 벌이고 생색내는 일은 잘한다.
참고로 유럽의 도시에서는 차 없는 거리가 점점 늘고 있다. 유럽에서는 원도심이라는 용어가 없고 그냥 도심이라고 부른다. 고색창연한 몇백 년 된 건물에 주민들이 살고 있고 카페, 꽃집, 슈퍼마켓, 영화관 등이 오밀조밀 채우고 있다. 도시의 광장에는 생산자가 직판하는 장이 서고 몇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 장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치면서 정겨운 시간을 보낸다. 15분 도시 같은 슬로건 말고 현장에 기반을 둔 정책을 만들어 내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 없는 거리 행사와 고도 제한 완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모순을 드러내는지 알게 됐다. 원도심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자고 이 행사를 벌이면서 정작 원도심을 재개발하는 고도 제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문화유산보호구역과 비행안전구역 등 필수지역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고도 제한을 해제하겠다는 정책은 눈가리고 아웅식이다. 도시의 가치를 살리는 게 아니라 필수지역이라고 명명한 지역을 박제화하고 마음껏 도시재개발을 하겠다는 말이다.
제주도는 도시정책을 다시 세우라. 주민과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꼼꼼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수렴하라. 형식적 공청회와 사업설명회는 쓴웃음이 나오게 할 뿐만 아니라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도민을 현혹하는 방식은 구태나 다름없다. 탐라문화광장조성사업의 실패 사례를 보면서도 여전히 토목사업에 몰두하려는 것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그만하라.
오래된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한다면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와 이야기의 보물 창고가 제주시 원도심이라는 사실에 최우선의 방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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