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20205년 연말이 되어 올해의 유행을 돌아보는 시간이 오면 그 리스트에는 분명 '지브리풍 ai 열풍'이 오르지 않을까. 전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지브리의 애니메이터들이 직접 만들어 준 것 같은 각양각색의 사진 변환 이미지들이 2025상반기 한국의 온라인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챗지피티에게 간단한 주문을 건네면 받아볼 수 있는 이 손쉽고 빠른 데다 재미있고 자랑할 만한 유행은 급속도로 퍼져 챗지피티를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을 중장년층까지 이 유행에 동참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신기술이 갖게 되는 기계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와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지브리 풍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이미지는 인공 지능 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을 대폭 줄이는 효과가 있었고 저작권 침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행은 빠르게 점화된 바 있다.
바야흐로 A.I(인공 지능)의 일상 침투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어떤 이들은 A.I 를 이용해 사주를 보고 연애 운을 점 치는 한편 업무나 과제 작업의 검색 기능으로 챗지피티를 사용하는 이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그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A.I 와 일상적인 친밀감을 쌓아가고 있다. 나를 기반으로 나를 분석하던 도구에게 감정적 영향을 받고 주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최근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A.I 와 사랑에 빠진 이들을 다룬 바 있다. '실제로 만질 수도 없고 체온을 느낄 수도 없는 A.I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들'이 존재하는 20205년, 우리가 A.I에게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
황승재 감독의 영화 [귀신들]을 이 A.I를 소재로 만든 독립 옴니버스 영화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는 오프닝에서 '이 이야기들은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내걸면서 시작한다. 인간 형태의 A.I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어떤 용도로 주문하시겠습니까? 라는 있을 법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인간이 꿈 꾸는 가능과 불가능의 미래들을 다소 차갑고 쓸쓸한 시선으로 예측해 그려낸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결실, 세상을 떠난 이와의 재회라는 소망, 간절한 욕망의 실현을 상상하던 인간들이 현실이 된 상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치밀한 범죄, 반복되는 오류, 서늘한 공포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마치 연작 소설집처럼 구성해 보여준다. [귀신들]이라는 제목은 이 허상과 마주하는 순간 느끼는 허무함과 두려움 등의 감정에 맞닿아 있다.
지난 해 개봉했던 김태용 감독의 영화 [원더랜드]또한 죽은 사람을 인공 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서비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에 대해 묻는 이 작품은 기술이 복원할 수 있는 지점과 기술로는 완성될 수 없는 감정의 구멍을 멜로 장르의 눈빛으로 찬찬히 들여다 본 작품이었다. 인공 지능이 가져다 준 기적 같은 재회의 순간 이후에도 이별의 시점은 또 다시 다가오기 마련이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기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원더랜드]는 그렇게 작별의 땅이라는 현실의 공간에 디딘 발을 떼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백세 시대라고 해도 인간사의 유한함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끝을 향해 살아간다. 기술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발명을 거듭하고 있지만 끝내 감정의 구석까지를 발견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 나의 내밀한 감정과 사적인 고민들을 솔직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A.I 밖에 남지 않는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알려준 비밀 덕에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될 그 친구의 피드백은 내가 원하는 정답에 가장 가까울 것 같아 마음이 놓이는 한편으로 어쩌면 나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지난한 수고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워졌다. 정답으로만 생을 채운다는 것은 어쩐지 불행할 것 같다. 쓰고 지웠던 무수한 오답들을 떠올리자 거기 진짜 내가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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