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있던 역사 '목소리'가 되다
극단 세이레 연극 '오사카에서 온 편지'
4·3 당시 일본으로 밀항한 정자 이야기
"모든 제주인의 기억… 가족 떠오를 것"
작성 : 2025년 02월 03일(월) 17:20
극단 세이레의 2025년 첫 공연인 연극 '오사카에서 온 편지.
[한라일보] 2009년, 일본 오사카의 작은 식당 '시츠코'. 여든을 훌쩍 넘긴 고정자(이하 정자) 할머니가 이곳 주인이다. 몸국과 고기국수 같은 제주 음식을 팔며 근근이 생계를 잇는 정자에겐 60년 지기 미츠코, 수양딸 마유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제주에서 온 작가라며 한 남성이 식당을 찾아오기 전까지는.
극단 세이레의 2025년 첫 공연인 연극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정자의 이야기다. 4·3 당시 일본으로 밀항한 제주사람 정자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남편까지 죽었다는 소식에 도망치듯 바다를 건너야 했던 정자는 60년이 넘도록 고향 제주에 돌아가지 못한다.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을 소리 내면서 이야기는 새롭게 흘러간다.
정자라는 한 인물은 4·3을 온몸으로 겪은 제주 여성이기도 하다. 강은미 작가와 함께 극본을 쓴 정민자 연출은 '연출 의도'를 통해 "4·3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삶의 희망마저 잃어버린 제주 여성, 특히 일본으로 떠난 뒤 지금껏 고향인 제주에 돌아오지 못한 제주 여성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며 "이 공연을 통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채 왜곡되거나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는 4·3을 깊이 이해하길 바란다"고 했다.
연극은 자신 안에 묻어둔 그리움을 찾아 다시 바다를 건너 제주로 오는 정자를 따라간다. 가슴속 말이 목소리가 되는 순간이다. 극단 세이레 대표이자 정자를 연기한 김이영 대표는 "4·3을 피해 오사카까지 가서 제주와 모든 연을 끊고 살던 정자가 다시 제주로 돌아와 흔적을 찾게 되는데,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연기를 하면서도) 많이 아팠다"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제주에서 4·3을 안 겪은 분들이 없는 것 같다. 특별히 얘기하지 않아도 제주도민이라면 저(정자)를 보며 부모, 할머니 등 가족을 떠올리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연극은 '2024 지역 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으로 제작됐다.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 오사카에 사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빌렸지만 새롭게 쓰여진 얘기다. 공연은 오는 7일 오후 7시와 8일 오후 3시·오후 6시에 진행된다. 예매는 문자 또는 인터파크로 하면 된다. 관람료는 전석 1만원이며, 공연 시간은 100분이다. 문의 010-5755-9220.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 목록
Copyright © 2018 한라일보. All Rights Reserve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