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2·28, 6·23 그리고 4·3
작성 : 2023년 01월 17일(화) 00:00
[한라일보] ‘평화의 섬’은 전쟁이나 학살이 벌어진 곳, 또는 그런 위기가 존재하는 곳에서 나오는 말이다. 동북아시아의 세 섬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은 평화의 섬 담론이 활발한 곳들이다. 제주 섬은 75년 전, 3만의 무고한 생명을 무참하게 앗아간 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오키나와 섬은 2차대전 막바지 처참한 전쟁으로 12만의 목숨이 사라진 곳이다. 타이완 섬은 국공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쫓겨온 후 10만의 민간인을 학살한 곳이다. 이렇듯 20세기 중반의 동북아시아는 일본 제국주의가 몰락하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쟁과 냉전의 형태로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낳았다.

아픈 희생을 체험한 사람들은 평화를 이야기한다.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 세 섬의 사람들이 강렬하게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것이 섬에 갇히는 순간, 평화 이야기는 무기력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최근 오키나와를 방문해 '평화예술' 특강을 진행한 후 오키나와 청년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동북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나 역사 교육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좀 심했다.

오키나와 청년들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만들고 누려온 나라, 류큐왕국(琉球王國)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가 같은 방식으로 조선을 침략했고, 안중근이 그를 척살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제주 섬에서 4·3이라는 이름의 항쟁과 학살이 있었다는 것, 타이완 섬에서 2·28사건이라는 엄청난 학살이 벌어진 것을 알지 못했다. 오키나와는 전쟁과 평화라는 의제에 매우 민감한 곳이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 내부의 문제에 국한한 것이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키나와 전투가 남긴 상흔은 지금까지도 곳곳에 남아있고, 그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추념하는 일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이 배어있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고통과 상처에 연동돼 있는 이웃 섬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눈 감고 귀 막은 상태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헤아리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 나가는 공감의 정신이 부재한 것이다. 제주의 상황은 어떨까? 생각해 보니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4·3 7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평화의 섬 담론을 이웃 섬들과 나누면서 공감과 연대 차원에서 성찰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타이완 2·28’과 ‘오키나와 6·23’을 기억하는 것은 ‘제주 4·3’을 기억하는 것과 다른 일이 아니다. 70주년에 4·3 기억 투쟁의 전국화를 이뤘다면, 75주년에는 이웃 섬들과 함께 나누는 섬의 평화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제주 4·3이 제주 섬 안에 갇히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안중근의 이토 척살이 동양평화론이라는 단단한 담론 체계를 가지고 이뤄졌듯이 제주 4·3이 동북아시아 평화론으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함께 뜻을 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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