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동화로 묶인 작품 4편실제 사건 모티브로 창작"누굴 업신여길 권리 없어"
첫 창작집을 냈을 때 그는 주변 작가들에게 걱정 어린 소리를 들었다. 동화에 슬픔을 담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작가는 모름지기 혁명가일 수도, 세상을 만드는 창조자일 수도 있다"는 그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은 세상의 어떤 슬픔들을 알아야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조리에 눈길을 둘 수 있다고 본다. '시사 동화집'으로 이름 붙인 새 작품집 '온정이'를 펴낸 제주 장수명 작가다.
'시사 동화'는 세상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소재로 삼은 글이다. 그 의미처럼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려낸 '온정이'에 실린 네 편의 동화는 우리나라 안팎에서 그리 오래지 않은 때에 벌어진 이야기를 모티브로 썼다.
'국수할매'는 지난 4월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의 마지막에서 영감을 얻었다. 정 추기경이 이 땅과 이별하면서 남겨진 이들을 위해 장기를 기증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바로 작업한 동화다. 작품에 나오는 '할매국수'집의 할머니 '프릴'도 그런 삶을 실천했다. 표제작 '온정이'는 2018년 11월 벌어진 고시원 화재 사건이 바탕이 된 동화로 이주민 자녀인 주인공을 통해 더불어 같이 사는 우리의 생존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실험실의 콩들'은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얽힌 루머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동화로 모든 생명체들의 공동운명체적 연관 관계를 짚었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을 그 어린 사람을 기억하며 아프게 작업한 작품"도 있다. 2013년 밀양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비극이 담긴 '소풍 가는 날'이다. 작가는 무서운 이모를 새엄마로 맞이한 아이 영이를 등장시킨 이 작품에서 모든 어린이는 어른이 될 권리가 있고, 아무도 그들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화 속 그림은 김품창 작가가 맡았다. 담담한 묵화처럼 그려진 삽화는 각기 다른 사연에 밴 아픔을 더 진하게 드러낸다. 도서출판답게. 1만3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