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가로수가 사라진 풍경
작성 : 2017년 10월 17일(화) 00:00
제주여고를 지나는 도로의 풍경은 아직도 낯설다. 연륜을 갖춘 아름드리 구실잣밤나무가 풍성함을 유유히 자랑하던 중앙화단 자리는 버스 중앙차로 공사로 자취를 감추었다. 익숙한 풍경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위안은 날 선 낯섦과 황량함에 아린 불편함으로 바뀐다. 늘 곁에 있던 사람과 사물의 존재는 사라진 후에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의 대중교통체계가 30년 만에 대폭 개편되었다. 이번 개편의 특징은 버스 증차, 노선의 단순화, 시내·외 요금 단일화, 급행버스의 신설과 버스 우선차로제 도입 등 대중교통 편의를 위한 이동의 신속성과 효율성에 있다. 그동안 제주도 여행의 불편사항 중 많은 지적을 받았던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30년 만의 개편이라면 보다 더 면밀한 검토와 분석 위에서 시행될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점도 많다. 정책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고,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정책의 시비를 가리는 일 또한 너무 섣부른 일일지도 모른다.

대중교통체계가 개편되어 시행 중임에도 아직 중앙로의 중앙차로는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과 부산의 버스 중앙차로는 대도시의 대중 교통수요가 많은 도로에서 시행되었다. 시간당 통행량을 비교하였을 때 제주시내 중앙차로의 효용성은 시행 후 점검하여야 할 것이지만,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중앙차로 구간의 정체 현상은 극심할 것이다. 정책은 어느 한 쪽의 불편을 전제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대중교통의 편리성이 자가용 운전자의 불편을 전제로 추진되는 것은 정책의 불편부당성을 침해하는 일이다. 더구나 50억이 넘는 공사비와 설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버스 정류장의 재설치는 이중의 낭비가 아닌가.

도로의 품격을 말하고 싶다. 품격은 사물에서 느껴지는 가치나 위엄을 뜻한다. 가로수는 도시미관 개선·대기 정화·도시기후 조절·녹음 제공·소음 감소·교통안전 기능 등 다양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제주여고 앞 구실잣밤나무는 오랜 세월과 함께 자리를 지켜온 위엄을 자연스레 내보였다. 제주시내 도로에서 자랑스럽게 품격을 논할 수 있는 도로가 얼마나 있을까. 도로의 기능을 단순히 이동성과 접근성의 측면에서만 논할 수는 없다. 특히 관광을 주산업으로 하는 제주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구실잣밤나무가 서 있던 제주여고 앞 중앙화단은 제주시내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의 품격을 지닌 도로였다.

대중교통체계의 대폭 개편에서 도로의 품격이 무시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동의 신속성과 효율성과 함께 도로의 품격과 도시의 품격을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제주도의 특성을 담아 제주형 대중교통의 패러다임을 설정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현재 유리로 되어서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는 서 있을 수조차 없는 버스정류장을 환경친화형의 제주다운 디자인으로 설치하면 어떨까. 정류장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자체 전력으로 노선 안내 및 문화와 관광 콘텐츠 안내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휴대전화 충전 등 새로운 편의시설을 설치한다면 어땠을까. 또한 새로 도입되는 버스의 좌석을 승객 편의를 위해 넓게 배치하고, 캐리어를 실을 수 있게 앞쪽에 짐칸을 설치한다면 어땠을까.

가로수가 사라진 풍경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이 되어 갈 것이다. 중앙차로 또한 처음의 불편함에서 점차 적응되어 나름의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효용성에 매몰되지 않은 익숙함이 그립고, 품격이 도로 곳곳에 향기를 내뿜었으면 한다. 정책의 품격은 마음을 아우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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