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사탕수수밭에서 억새밭으로 불어온 바람
작성 : 2015년 06월 02일(화) 00:00
2013년 1월, 오키나와의 사탕수수밭을 거닐었던 적이 있다. 주민 140여명이 한꺼번에 죽은 곳인 요미탄촌(讀谷村)의 치비치리 동굴을 둘러보고 나오던 길에 노래비를 안내하는 표식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사탕수수밭 사이에 설치된 '사탕수수밭 노래비'에는 "솨아아 솨아아 솨아아 넓은 사탕수수밭은/솨아아 솨아아 솨아아 바람이 빠져나갈 뿐/오늘도 멀리 바라보는 끝에 푸른 물결이 넘실거려요/여름 햇살 속에서"로 시작되는 테라시마 나오히코(寺島尙彦) 작사·작곡의 노랫말이 새겨져 있었다.

오키나와 전쟁이 끝난 후 한 소녀가 전사한 아버지를 찾아 사탕수수밭에 가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슬픔을 호소하는 내용인 바, 2003년 이 곡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사탕수수밭에 둘러싸인 그곳에서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노라니 오키나와의 아픔과 슬픔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철의 폭풍'이라는 작전명 아래 질주해오는 미군의 모습, 주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본군의 모습,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속절없이 희생당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치지는 듯했다.

나는 마치 제주섬 초원의 억새밭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눈부신 금빛의 들판과 오름들, 서리 깔린 듯 하얀 억새꽃 무리들, 구름이 그림자를 던지며 지나갈 때마다 마치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밝았다 어두웠다 하고 있었다"는 현기영의 4·3소설 '마지막 테우리'의 한 장면도 연상됐다.

제주4·3에 관심을 두다 보면 4·3은 아직도 여러 형태로 진행 중이고 그것은 또한 제주만의 문제가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시나브로 오키나와에 다가서게 된다.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본토 사수를 위한 항전을 벌이면서 주민 십수만명이 희생된 현장이다. 현재는 그 면적의 20%를 미군기지가 점하고 있는 '기지의 섬'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보면 오키나와는 제주의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로 여겨진다. 제주의 문제를 확대하고 앞당겨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이 바로 오키나와라 할 만하다.

이시우가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 동백꽃 눈물'에서 언급한 것처럼 "태풍이 두 섬을 연결하듯 오키나와와 제주를 연결하는 숙명의 끈"이 느껴진다. 두 섬이 태풍과 쿠로시오 해류로 연결된다는 점은 필연이 아닌가 한다.

오키나와의 역사와 현실은 4·3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연대와 더불어 폭넓은 시야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4·3을 4·3 자체만으로 애써 한정하려거나 지역적·국내적 범위에 묶어두려는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불량위패'니 '폭도공원'이니 하는 논의는 지극히 협소한 시각의 산물이다. 5·10선거 반대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는 것이므로 4·3은 반란이라 규정하는 논리는 치졸하다. 4·3특별법과 '4·3진상조사보고서'가 특정 정권의 정치적 논리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주장은 지난(至難)한 진상규명 투쟁을 벌여온 도민들을 모독하는 처사다. 김석범의 4·3평화상 수상에 대해 시비를 걸어오는 논리들도 같은 선상에서 제기되는 협소하고 치졸한 시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평화와 인권에 기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4·3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제주와 오키나와가 만나야 할 까닭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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