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도민의 혈세, 예산안 파행 처리를 보면서
작성 : 2015년 03월 24일(화) 00:00
서기 1066년 영국 땅을 정복한 노르만人 윌리암 1세는 영국 헌정사의 기초가 된 대평의회(Grand Council)와 소평의회(King' Court)라는 두 개의 자문기구를 두었다. 이후 12세기 중엽 대평의회는 의회(Parliament)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오늘날의 의회의 선구가 되었고, 소평의회는 오늘날의 집행부와 사법부의 기원이 되었다.
당시 의회의 기본적인 권한의 하나는 과세에 대한 동의권이었다. 1252년 제정된 대헌장은 옛 관습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 새로운 과세에 대해서는 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이어 1340년 에드워드 3세의 법률에서는 모든 과세는 신구를 막론하고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회는 이처럼 예산을 놓고 집행부와의 견제와 갈등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두서없이 영국 의회를 끌어들인 것은 다름 아니라 2015년 도예산안을 놓고 벌어진 극한적인 도와 도의회의 힘겨루기를 보면서 참담함을 느껴서이다.
지난해 10월 '예산 협치' 공방에서부터 시작된 예산안 처리 파행은 지난해 말 도에서 편성한 예산안이 대폭 삭감되면서 증폭되었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총예산 규모 3조 8194억원 가운데 1682억원(4.4%)이 삭감되어 확정되었다가 지난 13일 제1차 추경예산 심사에서 삭감된 예산 가운데 세출예산 198억여원(0.5%)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이 당초 도에서 편성한 예산 규모로 부활된 것이다.
파행의 이면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우선 예산편성의 사전협의를 의미하는 예산 협치 공방이다. 도의회와 집행부의 관계는 협치(governance)의 관계이기보다는 이미 권한과 책임을 법률로 규율하고 있는 견제와 균형의 관계이다. 예산 협치 공방은 협치의 지나친 확대 해석이었다. 협치 개념은 정부와 시민사회, 경제주체의 협력을 통한 '공동 관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예산편성의 사전협의는 집권 세력과 다수 여당 의원의 담합에 의한 예산 농단(壟斷)을 가져올 수 있다.
더욱이 예산 협치의 주장은 의원이 집행기관이라도 되는 듯이 예산안에 관행처럼 끼어 있던 의원 몫의 사업비를 낯 뜨겁게 드러냈다. 이는 또한 법령에 위배되는 비용항목의 신설을 통한 증액을 가져왔으며 집행부 재의 요구의 요인이 되었다. 비용항목의 신설과 증액은 자치단체장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의원은 없을 것이다.
의회와 집행부의 기(氣) 싸움도 예산안 처리 파행에 한 몫을 했다. 수정 예산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피력하는 도지사에게 마치 의사진행을 방해라도 하는 것인 양 '퇴장도 명할 수 있다'는 의장의 경고는 무엇인가. 여기에다 예산 개혁을 내세우며 기회 있을 때마다 의회와 각을 세운 원 도정의 대언론 인터뷰도 파행을 부추겼다. 의회와의 힘겨루기로 비춰졌다.
결국 집행해보지도 않은 예산에 대한 추경예산 조기 편성이라는 의회의 요구와 의회의 눈치를 본 집행부의 재의 요구 철회가 맞물려 겨우 0.5%를 삭감하는 예산안을 확정했다. 삭감된 예산은 대부분 기업에서나 있을 법한, 최근 과세의 대상으로도 거론되는 '내부 유보금'으로 남겨 놨다.
도민의 혈세를 어디 장롱 속에 묻어둔 기업의 비축자금 쯤으로 인식하는 것인가. 아니면 힘겨루기로 쓰임새가 달라져야 하는 힘센 자의 전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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