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농사로 이룬 부농의 꿈 개방물결 맞아 약초농사에 희망끈끈한 마을공동체의식으로 분교 위기에 있던 학교도 살려자연과 더불어 하는 삶 통해 주민 모두가 100세 시대 꿈꿔
예촌이라는 명칭을 오래 써온 마을이다. 마을사람들의 성품이 온순하고, 예의범절이 마을공동체에 가득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았다. 그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의 땅이다. 큰 서당이 많았다는 엄격한 선비의 마을. 그래서 예촌이란 지명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신례리는 일제 강점기에 행정적으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사용된 이름이라고 한다. 신례1리는 해발 100m에서 170m에 이르는 지역이며 그 아래 바닷가 인접 마을은 신례2리다.
보물섬 제주의 보물과도 같은 마을이다. 신례천 냇가가 있어서 그렇다. 천년 설촌의 역사를 줄기차게 흘러내린 흔적이 하천 암반에 돌꽃(현무암에 번식한 포자)으로 피어있다. 하천 정비를 한다며 귀중한 자연조형물들을 중장비로 부수고 긁어내버린 제주의 숱한 하천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지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존귀한 생명을 보는 것 같다. 하천 양 옆을 울창한 나무들이 옹호신장처럼 경호하는 형세다. 천연보호구역 신례천. 제주의 모든 하천에 적용되었어야 하는 것을. 자연을 파괴할 권리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니까. 신례천을 따라 남북으로 11.5㎞, 동서로 2.2㎞의 길쭉한 모양을 한 마을이다. 풍수지리가 보편적 문화였던 고려 때부터 사람이 살아왔다는 신례리를 보면 납득이 가는 구석이 많아진다. 뒤로는 이승이오름이 높은 곳에 든든하게 자리잡고 마가미 줄기가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형성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부자마을이면서 장수마을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두 가지를 다 가졌다. 노인회관에 350명이나 등록이 되어 있다는 건강장수마을인 것이다. 양병수 노인회장(77)은 40년 넘게 감귤농사를 해왔다고 한다. 제주감귤의 역사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귤로 이룩한 부를 통하여 자식농사에 재투자한 삶이 마을 가득 풍겨난다.
마을공동체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는 신례초등학교가 학생수 53명으로 분교 위기에 처해있을 때, 총동창회와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빈집수리 무상임대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친 결과 80명 이상 학생 수를 보유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힘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부농의 여유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을의 일을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하였음을 체감하게 한다. 나의 일을 마을의 일로 생각해줄 것이라는 공동체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목장조합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목장면적이 무려 175만㎡(53만평). 목축산업의 장이기도 하지만 경관적 가치는 더욱 커 보인다. 울창한 나무로 둘러쳐진 목장 풀밭이 이색적이다. 이승이오름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차에서 내려 걸어가지 않으면 못견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신례천 상류에 숲을 덮고 흐르는 물소리를 벗하여 생태숲길이 있다.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가보지 않으면 모르니 어떤 설명도 무용지물이라 해야겠다. 마을 안에 천연보호구역이 있어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는 사람들.
감귤농사로 이룩한 부농의 토대 위에 불안한 미래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유무역협정의 여파가 밀려들 것이 뻔한 현실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아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양창문(48) 새마을지도자는 "신례1리가 보유한 풍부한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약초농사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한다. 토양과 기후에 대한 농업인의 축적된 경험을 통하여 실질적인 효과로 승부를 걸 생각이라고 한다. 고부가가치 농업을 향한 물밑 노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미래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준비된 자만이 경쟁권한을 부여받게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 세대가 이룩한 성과 위에 아들 세대가 신례1리의 미래를 책임진 상황인 것이다. 김창혁(53) 이장은 한 세대 뒤 신례1리의 모습을 명약관화하게 설명하였다. "주민 모두가 100세 시대" 지극히 함축적이다. 과도한 것을 피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통하여 건강한 삶을 영위하겠다는 전략인데, 도시인들이 꿈꿀 수 없는 생각이다. 발전 방향 또한 여기에 녹아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자부심에서 오는 자신감이 이런 것이리라.
마냥 무엇을 지키는 방향으로 마을의 꿈을 설계하는 것은 아니었다. 1차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다른 산업과 연계, 융합을 향하여 마을사람들은 치열한 토론과 실현가능성을 점검하고 있었다. 관광산업과의 만남도 '어떠한 지점에서 협력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관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교육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신례1리가 가지고 있는 유형·무형의 자산들을 어떻게 하면 마을 발전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색깔 있는 마을 만들기'사업으로 귀착된다. 이미 5차 교육까지 마쳤다는 김창혁 이장은 자신감에 차 있다. 모방과 답습으로 점철되는 마을 만들기 사업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신례1리만의 색깔은 어떤 빛깔로 다가올 것인가 자못 궁금해진다.
절감하는 한계도 있다. 마을 중심을 척추처럼 지탱하는 신례천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서 도로가 하천을 따라 주로 형성되었다. 그 결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가 상대적으로 모자라다는 것이다. 관광산업과 결부된 다양한 발전 전략을 꿈꾸고 있지만 하천 경관을 조망하며 지나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경관보전지역으로 묶인 신례천을 경관자원화 하기 위한 해법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보전 또한 활용 가치의 극대화를 위한 길이라는 지적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위미리에서 시집 왔다는 강명선 부녀회장(47)은 며느리를 위미리에서 맞아들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만큼 행복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고향마을에서 며느리를 얻고 싶을 정도면. 양창문 새마을지도자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신례1리 청년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다가 청년회장도 하며 지역에 봉사하기를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신례1리의 미래는 이렇게 가족을 통해서 이어지는 것이니까. 제주사회가 신례1리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