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한림읍 상명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부지런' 유전자로 희망을 꿈꾸다
작성 : 2014년 08월 12일(화) 00:00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는 서로 믿고 살았던 정낭정신의 부활을 위해 모든 집에 대문을 없애고 거기에 정낭을 설치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하늘도 막을 수 없는 '알부자' 마을마을이름은 명월리의 윗동네 의미서로 믿고 살았던 '정낭정신' 품어공동체의식으로 도전적 자세 지향전국 최고 농촌체험휴양 마을 구상축산분뇨 문제 향약으로 대응해야
제주 선인들이 게으름 피우는 아들과 딸들에게 야단치던 말씀이 있다. "부지런 부잰 하널도 못 막은댕 헌다." 하늘이라 한들 부지런해서 부자가 된 자들을 어찌 막을 수 있다는 말이냐! 제주에서 하늘도 막을 수 없는 알부자 마을이 있다면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밤 10시 지나서까지 경운기 소리가 들리는 마을. 낮에 수확한 야채를 포장작업해서 출하시키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그런 주민들을 보면서 다른 마을 사람들도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마을 임원들에 대한 인터뷰도 비오는 날에야 겨우 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홍영하 노인회장이 전해주는 설촌 유래는 이러하다. 옛날 명월이라는 큰 마을 위쪽 지명 중에 '느(니)지리'라는 곳이 있었다. 1891년까지는 명월리라 부르다가 구역이 넓고 광범위해 불편한 점이 많아 분리하였다. 명월리의 윗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쓰던 상명월에서 따와 상명리라고 마을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대대로 농경과 목축으로 살아온 제주섬 북서쪽 중산간 마을이다. 그 아름다운 마을이 4·3 광풍 속에서 마을 전체가 불타버렸다. 해안 마을로 이주하여 살다가 돌아와 재건하여 이룩해낸 조상들의 터전. 곳곳을 다니다보면 4·3 이전에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슴이 저며 온다. 취락구조는 그 원형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지만 작은 밭이 되어버린 집터들. 집을 잃은 올레는 어디로 향하나.
상명리 주민들의 공동체 정신이 강렬한 이미지를 뿌리며 세상에 등장한 것은 2007년이다. 그 모습은 대문 없는 정낭마을. 다른 마을들이 제주섬 외부에 대한 선망 의식에서 오는 모방과 답습에 탐닉할 때, 제주인들이 지녀온 마을 공동체의 힘에서 브랜드 가치를 찾고자 했다. 서로 믿고 살았던 정낭정신의 부활을 주장하며 모든 집에 대문을 없애고 거기에 정낭을 설치한 것이다. "마을공동체 복원이 미래지향적 발전의 가장 중요한 토대지요." 정낭마을은 수준높은 의식 변화가 이끌어낸 외적 표현이라고 안익주 상명리장은 이야기한다. 가시적 성과는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다양한 도전과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불과 7년 만에 이룩한 거대한 자신감이 아름답다.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평범한 중산간마을로 보이지만 인적자원과 문화적 전통을 통하여 시대적 도약을 꿈꾸는 마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이다. 다양한 품종을 소화하는 상명리의 밭들. 콩, 양파, 감귤, 양배추, 쌀보리, 콜라비, 메밀, 쪽파, 조, 마늘, 깨. 밭을 부지런하게 관리하는 능력에서 오는 결과라고 한다. 축산농가 또한 양돈과 양계를 통하여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상명리는 가가호호가 부자이기도 하지만 마을공동체도 땅부자다. 45만평에 달하는 마을 공동목장이 있다. 많은 마을 공동목장이 개발업자들에게 팔려나간 현실에서 공동목장을 지켜낸 것은 공동체의식이 강력하게 살아있음을 반증한다. 한우만 키우는 특화전략을 구사하는 상명마을목장. 한우만 400여 두를 키우고 있다. 곶자왈에 둘러진 모습 밖으로 보이는 오름들과 한라산 그리고 멀리 바다. 필자가 동물을 부러워해 본 것은 상명목장의 한우들이 처음이다. 차분하게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온순한 한우들이 기다리는 상명목장 걷기를 권하고 싶다. 제일 높은 곳에 경관 좋은 평지를 잔디밭으로 만들면 최고의 야영장이 될 것이다.
상명리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부지런 유전자는 미래에 대한 도전욕구에 숨 가쁘다. 이 마을로 시집온 지 30년 되었다는 문덕임 부녀회장이 이야기하는 다시 30년 뒤. 상명리는 어떤 마을로 변모하여 있을 것인가. 그 꿈은 이러하다. 전국 최고의 농촌체험휴양마을 만들기. 단계별 전략도 지극히 구체적이다. 지난해에 이미 제주특별자치도 마을발전 1단계, 예비마을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주민주도로 마을발전 계획을 수립하였다. 올해 한림읍에서 추천을 받아 제주형 커뮤니티비지니스 추진마을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사업추진 중에 있다. 마을자금으로 농협창고 건물 2동을 매입하여 농가레스토랑인 수눌음밥상-로컬푸드 사업과 수눌음 체험 농장을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상명리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고 신선한 농축산물을 가지고 관광객을 맞이하겠다는 106가구의 주민들. 무서운 도전의지가 느껴졌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고 했다. 황토 찜질방을 만들어서 고된 농사일 때문에 고장난(?) 몸을 추스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어르신들도 좋아할 일이며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급 수준의 시설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다음이 친환경 숙박시설을 마을 목장 부지를 이용하여 건설하고, 마을주민들이 운영, 제주의 현무암 구들장이 있는 전통초가를 기본적인 틀로 해서 군불을 땔 수 있는 농촌체험형 숙박시설로 더욱 큰 마을공동의 재산을 구축하겠다는 미래 설계가 있었다.
번창하게 될 마을기업의 최정점에 최고급 수준의 요양원 건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안익주 상명리장. 상명리 어르신들이 도시지역 요양원에 가서 일면식도 없는 분들과 적응하며 말년을 보내는 것보다 한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과 함께 이 마을에서 나온 먹거리로 식사를 하며 살아가게 하고 싶은 심정이 그러한 청사진을 만들게 했다는 것. 최고의 시설과 운영능력을 보유하여 전국에서 노인들이 가장 말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요양원 이름이 상명요양원이 되도록 기필코 만들겠다는 의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30년 뒤에 지금 이장과 부녀회장도 그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마을공동체보다 안정적인 노후대책이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이러한 꿈에도 걸림돌은 있었다. 축산분뇨 문제였다. 행정에서 일손부족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상명리 마을 공동체에 지원사업과 감시 및 관리책임을 부여해달라는 것이다. 행정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조치가 법적 대응이라면 그 법보다 마을에서는 향약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마을공동체는 운명적 만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슬기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복착된 난관을 이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하겠다. 상명리가 부럽다. 부자마을이라서 부러운 것도 있지만 문제해결 능력이 더욱 부러운 것이다. 해결 능력도 없이 쥐고 행정에서 쥐고만 있는 권한이 마을 주민들의 앞길을 막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필자도 30년 뒤, 상명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 심사를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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