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숲길 사람들 몰려 격세지감"
사려니 숲길에서 꿀따는 김창은 할아버지
작성 : 2009년 05월 21일(목) 00:00
"열다섯살 4·3때 벌통 하나 주워서 시작한 양봉일이 허당보난 지금까지 햄주. 그동안 이 길을 하영도(많이도) 걸었주."

지난 19일 사려니 숲길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김창은(75·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사진) 할아버지는 사려니 숲길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있는 숲에서 벌통을 놓고 꿀을 따는 양봉업을 수십여년동안 해온 사람이다.

한통으로 시작한 양봉업은 지금은 30통에 이른다. 양봉농협이 있을때는 더 많았지만 지금은 조합이 없어져 30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전 사려니 숲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 길은 테우리들과 사농바치(사냥꾼)들이 드나들던 길이야. 숲이 우거지고 난 후에는 사람들이 숨어 살기도 했고 표고버섯을 따는 사람들이 걷기도 했어."

그는 숲길을 걸었던 세월만큼 길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면 숯을 구웠던 곳도 있고 사람들이 살았던 곳도 있지."

그는 5월부터 8월까지는 사려니 숲길 주변에 있다. 매일같이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를 확인하고 꿀을 채취하는 것을 일과로 하고 있다.

제주섬 어느 땅이 4·3의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사려니 숲길 주변에도 4·3의 상처는 남아있다. 김 할아버지는 "산사람들이 살았던 곳에서 한번은 유골도 발견한 적이 있어. 지금도 그들이 쓰던 솥이나 그릇 깨진 것들이 있지"라고 얘기했다.

그 이후 숲은 쉽게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구루마' 한대가 지날 수 있는 정도의 길에 불과했다. 그런데 요즘 관광객들까지 물어물어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려니 숲길에 가면 울창한 숲과 함께 김 할아버지처럼 숲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향기도 진하게 맡을 수 있다.

기사 목록

한라일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