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한쪽 날개를 잃은 왜가리는 날 수 없다
입력 : 2023. 06. 01(목) 00:00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한라일보] 구름 한 점 없는 목관아의 우연당 지붕 위에 왜가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연못의 물고기를 노리는 왜가리를 보려면 자연스레 하늘을 향하게 된다. 왜가리는 꼼짝하지 않지만, 더 높은 곳의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帥'가 새겨져 있다. 하도 높아 저절로 우러러보게 된다. 수(帥)는 통치자를 뜻하니, 최고의 지도자 또는 임금 더 나아가서는 하늘을 상징한다. 탐라순력도의 공마봉진(貢馬封進) 화폭에도 수기가 관덕정 우측에 세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노란색은 마치 밤하늘의 밝은 별을 보는 듯하다.

별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일까. 하늘에서는 인간마당을 내려다보고, 땅에서는 천상정원을 올려다보면서, 천지인은 서로 떼어내어서 안 되는 존재이다. 하늘의 별이 광명을 비추면 돌아가듯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다 함께 어울려서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바로 천, 지, 인의 삼재(三才) 사상을 반영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북두칠성은 인간의 수명과 길흉을 점치는 별이며, 장수의 별인 남극노인성은 제주섬을 비춘다.

보필성은 북두칠성 여섯 번째 별 좌우에 위치한 별로, 왼쪽 보성과 오른쪽 필성이다. '보필'이란 작은 두 별이 북두칠성을 떠받침을 강조하면서, 임금을 모시는 좌우측의 최측근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가 하늘을 떠받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양 날개 덕분이다. 새를 사랑한 윤동주 시인이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며, 별을 센 까닭도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편을 가르다 보면, 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별을 잘 볼 수 있듯이, 왜가리도 높은 지붕에 있어야 더 멀리 조망할 수 있다. 지위도 권력도 품성도 높을수록 존엄의 대상으로 여긴다. 높음은 곧 상징이며 모범이다. 하지만 언제나 높을 수 없다. 낮음도 고귀한 품성이다. 왜가리도 내려와야 먹잇감을 차지할 수 있고, 편안한 쉼을 누릴 수 있다. 날개를 다치면, 왜가리는 우러러보거나 굽어보는 일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짧은 수명만이 기다릴 뿐이다. 한쪽 날개로는 올라갈 수도, 내려올 수도 없으며 한쪽 날개를 잃으면 양쪽 다 잃은 것과 같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제주도의 행정구역은 제주목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정의현, 우측에는 대정현이 자리 잡아 균형을 잡았다. 한라산을 주산으로 모신 제주목은 마치 태평양을 향해 거침없이 비상하는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태평성대는 임금과 백성의 큰 희망이며, 어느 행정체제에서도 백성을 집단지성과 지극정성으로 보필함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미래의 제주형 행정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공론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과거 중앙과 지방 권력으로 결정되던 시스템을 내려놓고, 백성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도민이 바라는 세상이 완성될 것이며, 양 날개를 펼친 왜가리처럼 태평양을 향해 힘차게 날 수 있다.<김완병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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