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숙의 한라시론] 제주4·3, 75년 견뎌낸 여성들, 온전히 딛고 섰는가?
입력 : 2023. 03. 30(목) 00:00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한라일보] 이제 제주 역사에 가장 큰 상흔으로 남겨진 4·3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4·3은 이제 제주의 역사를 넘어 뼈아픈 한국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나아가 평화와 인권을 향한 세계적인 기록으로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역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희생자들 중 20%에 달하는 여성들과 유족 여성들의 경험을 드러내는 작업은 더뎠다. 2000년 전후 증언채록, 구술집 형태로 발간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제주4·3연구소에서 발간한 '제주4·3생활사총서-4.·3과 여성' 시리즈와 제주도가 지원해 지난 5년간 제주여민회가 채록한 구술자료집 등이 있다. 이러한 구술채록은 '잊어버린 줄 알았으나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니 기억이 난다'는 어느 증언자의 말처럼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의 경험이 망각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중요한 작업들이다. 4·3 관련 세미나에서 간혹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분출됐지만, 여전히 생계노동으로 남은 가족을 지키고 마을을 일으켰던 여성들의 삶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계기로 제주여성가족연구원과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는 뜻깊은 공동 행사를 가졌다.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는 지난 2009년 창립된 이래 소수 1세대를 포함, 2,3세대인 딸, 며느리 등 179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지역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가장 큰 행사는 4·3국가추념식 위령제례 음식을 마련하고 차 봉사를 하는 것이다. 유족부녀회로서는 공동포럼이라는 행사를 주도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당사자로서, 집단적인 주체로서 발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하였다.

공동포럼의 주제는 '제주4·3 여성유족 100인이 갈암수다'였다. 열 개 팀으로 나누고 각 팀별로 4·3 이후 노동, 가족부양, 교육기회, 호적, 양자 문제, 마을 재건 등 살아온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도록 했다. 이후 나눈 이야기를 팀별로 발표하고, 후세대에 남기고 싶은 말을 하도록 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과연 80세 전후의 여성유족들이 얼마나 속내를 나눌 것이며, 나아가 1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나와 발표를 하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우려가 무색하게 이야기 나누기 시간은 한 시간이나 연장됐고, 발표시간이 모자란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자신의 이야기를 서너 장에서 열 장 가까이 미리 써온 분들도 있었다. 한 분 한 분이 역사의 조각을 들고 있었지만 그 조각에 대하여 공적 자리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자리는 매우 적었음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피해자들에게는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말함으로써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기억되지 못한다.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아닌 노동을 하고 생명을 돌보면서 공동체를 재건한 역사적 주체로서의 제주 여성의 삶이 더 많이 기록되고 더 널리 기억되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그동안 견뎌낸 75년의 시간을 온전히 딛고 서게 될 것이다.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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