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해의 하루를 시작하며] 제주의 산업현장, 그 바닥을 엿보다
입력 : 2023. 02. 01(수)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한라일보]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줍는다'는 말처럼 아직은 깜깜한 새벽, 조용히 집을 나서서 자박자박 걷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눈에 보인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발걸음은 마치 잠자던 시계가 막 돌아가기 시작하는 소리 같다. 이들은 다시 일터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 몸을 담근 채 동트는 하늘을 맞이한다. 이런 노동의 새벽은 신성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하다.

다국적 언어와 침묵이 교차되는 제주의 산업현장, 생산직 근로자들의 고혈을 짜내는 하루 일당은 보통 건물 내부에서의 일은 한국인 9만 원, 외국인 12만 원, 외부에서의 일은 한국인 12만 원, 외국인 15만 원 정도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30~40대 중년층으로, 힘도 있고, 순발력도 좋을뿐만 아니라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 높은 고용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의 한국인 근로자보다 사업주들의 환대를 더 받는다. 결국 이 바닥의 왕초는 젊고 목소리가 큰 이방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자신의 임금 이외에도 불법 체류자의 일당에서 3000~5000원의 알선비를 받으며 부수입을 올리고, 그만치 높은 언성으로 일꾼들을 닦달하곤 한다.

이렇게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 현장에서 고급인력이 되어가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이제는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 바닥에서 어떤 할매는 밭에서 무 캐는 작업을 하다 하루 만에 쓰러져 누웠다 하고, 어느 불법체류자는 일자리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실수하지 않으려다 도리어 제 손가락이 잘리게 됐다 하고, 또 한 외지 청년은 100만 원 연체된 카드빚 때문에 연 3일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생선 비늘을 다듬다 끝내 하늘나라로 직행했다는 서늘한 이야기를 듣는다.

반면에 어떤 외국인 근로자는 꼭두새벽부터 시작된 일을 오전 중에 마치고 나서, 점심시간에는 식당 서빙 알바를 하고, 밤에는 단란주점 도우미로 뛰어 첫째 급여는 본국의 부모님께 보내고, 둘째 급여는 자신의 집세와 생활비로 쓰고, 셋째 급여는 금의환향을 위한 적금을 붓는다는 소리가 한겨울 이 바닥을 뜨겁게 달구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지금 제주의 산업현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난처한 상황은 비단 제주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생산 가능 인구가 2038년에는 지금보다 700만명이나 감소하리라는 통계청 예측이 있어 정부는 올해부터 외국인 근로자가 중도 출국 없이 10년까지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비전문취업비자를 발급 허용하겠다는 방안을 마련했다.

문제는 한국인 근로자의 만성이 돼가는 무기력증에 있다. 적은 노력으로 실업급여에 연연하며 시간을 보내다 삶의 주체성까지 잃어가는 듯하다. 이런 주인이 방치한 제주의 바닥은 이방인에게는 기회며, 금싸라기 땅이다. 그들이 허리 굽혀 주워 모은 것들은 우리 자산이 아니다.

이제 곧 입춘이다. 우리는 그 옛날 제주인의 처음처럼 스스로 바닥을 치고 올라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때다. <고나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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