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한마디 덕담을 생각하며
입력 : 2023. 01. 25(수)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한라일보] 기년법(紀年法)에 의하면 올해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이다. 천간과 지지, 오행을 조합한 기년은 '계묘년'이다. 2007년은 '정해년'으로 황금돼지의 해라고 연초에 받은 문자 메시지는 온통 황금이었다. 올해는 또 흑토끼의 해라며 보내오는 메시지마다 검은 토끼 이미지며 주술성 상징들이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는 이런 기년법에 의해 한해의 상징을 담아내곤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설날 아침에 한마디 말보다는 기년법에 의지해 덕담의 의미를 담아왔다.

고고학이나 문헌학 그리고 역사학의 관점에서 기년의 유래와 최초의 햇수를 판단하는 근거는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단군이 아사달에 조선을 건국한 해를 단군기원, 석가모니가 열반에 이른 해부터의 불기, 예수 탄생의 서기를 사용해왔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최초를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60년의 주기로 환산해서 추정한다면 '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최초의 갑자년은 기원전 2697년이다. 어떤 기년법이든 상징성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 지난 햇수를 헤아리는 수단일 뿐이다.

모든 발화된 말이 그렇듯이 상대방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 의미를 다 살려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처지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한 채 전하게 된다면 소통이 단절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은 거부감으로 외면하게 되고 더러는 말을 전하는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듣는 이로부터 그 인격마저도 의심을 받게 된다. 기년법이 햇수를 헤아리며 의미를 쌓아가는 것처럼 설날 아침의 덕담도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늘 살피며 느꼈던 것들을 정화해서 한마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일이라면 참 좋겠다.

친구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둘째는 내로라하는 기업에 취업해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첫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까지 마쳤으면서도 논문을 제출하지 못했다. 친구는 몇 번이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라고 했지만 어떤 이유인지도 말하지 않고 기간제교사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근무한다고 한다. 친구는 며칠 고민한 끝에 설날 아침 둘째 앞에서 주눅 든 첫째의 손을 꼭 잡고 "아빠는 어떤 경우일지라도 믿어. 힘내."라고만 하고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아파트 구석에 앉아 끊었던 담배 한 개비를 태우면서 눈물이 나더라며 윽박지르던 자신이 후회스럽다고 하소연을 했다.

우리는 1960년까지 단기의 기년법을 사용하다가 서기로 고치는 법을 제정하고 공포하면서 다음 해인 1961년부터 공식적으로 '서기'의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2023년 설날 아침에 흑토끼의 명랑함이며 용궁이란 사지에서 지혜로 탈출하게 된 토끼를 빌어 덕담을 건넸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너무도 고귀한 인격을 주술성으로 강제하는 만행일 수밖에 없다. 상대의 형편이나 지난 삶을 살펴 헤아리는 한마디 말이 설날 아침에는 오롯한 힘이 되지 않을까.<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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