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염정아라는 속수무책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2. 10. 07(금) 00:00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10년 전에 봤는데도 아직도 생생한 장면이 있다. 스스로가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한 사람의 처절한 몸부림과 무너짐 그리고 끝내 다시 일어서는, 용기라고도 패기라고도 부르기 어려운 종류의 곡진한 몸짓. 아마도 한국 드라마역사에서 입체적인 캐릭터를 손에 꼽을 때 빠지지 않을 인물 바로 [로열 패밀리]의 케이, 김인숙을 연기한 배우 염정아가남긴 장면이다. 남편을 잃고 절대적인 권력자인 시어머니 공순호 회장 앞에서 쓰러진 그를 향해 던져진 차가운 한 마디'저거 치워'. 드라마를 보던 나는 오한이 일었지만 쓰러진 김인숙은 기어코 뜨겁게 일어셨다 배우 염정아의 온도로.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30년 넘게 다채로운 면모를 선보여 온 배우 염정아는 힘들이지 않고 변신을 해내는 데 탁월한배우다. 데뷔 초 장신에 세련되고 도회적인 외모로 주로 청춘물과 장르물에서 주목 받았던 그는 이후 다양한 작품들을 통과하며 스스로의 스펙트럼을 점차 넓혀왔다. <장화, 홍련>과 <장산범>이라는 호러 장르 안에서는 각기 다른 결로 섬세하게 인물의 감정을 쌓아 올렸고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인 <범죄의 재구성>, <전우치> <외계+인>에서는 경쾌한 코미디감각으로 작품을 매끄럽게 매만졌다. <오래된 정원>의 정통 멜러 연기와 <카트>와 <미성년>을 통해 보여준 미세하고강렬한 생활 밀착형 캐릭터 연기까지 배우 염정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배우임을 매 작품을 통해 입증하고 있는 배우다.

대중적으로는 <스카이 캐슬>이 기록한 공전의 히트를 빼놓을 수 없다. 신분을 감춘 채 대한민국 상위 0.1퍼센트가 모여사는 스카이 캐슬 안에서 살아가는 한서진/곽미향을 연기한 염정아는 자식을 최고로 만들고 싶은 엄마의 열망과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그야말로 매섭게 빚어냈다. 차갑게 식은 듯 하지만 일순간 불처럼 일어나는 배우염정아의 연기는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보는 이를 결박한다. 뚫어져라 쳐다 보는 강렬한 눈빛과 조소와 낙담으로 일그러지는 표정, 꼿꼿한 몸의 정렬을 어느 순간 무너 뜨리는 대담한 움직임까지 배우 염정아는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전환으로 보는 이의 허를 찌르는 놀라운 배우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 최초의 쥬크박스 뮤지컬을 표방한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신파의 주인공이자 춤과 노래까지 소화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이다. 이번에도 염정아는 거침이 없다. 인물의 전형성을 그대로안고 가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관객들을 들었다 놓는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울림이 또렷한 염정아의 목소리와 한숨과 눈물, 미소와 폭소 사이를 자유 자재로 오가는 그의 움직임 자체로 설득력을 갖는 작품이다. 가족의한 가운데에서, 첫사랑의 시간에서 멀리, 죽음에서 가까이 자리한 한 인간의 복합적인 형체를 구현하는 배우 염정아의세공술은 놀라울 정도다. 나는 이 영화를 보다 여러 차례 갑자기 울어 버렸다. 말 그래도 속수무책의 눈물을 여러 번 쏟아냈는데 기억해 보니 그 장면 마다 배우 염정아가 웃거나 울고 있었다. 무엇보다 염정아는 자신이 연기한 인물을 온 몸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배우다. 그건 분명 깊고 무거운 포옹임을 나는 눈물로 끄덕였던 것 같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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