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상처가 만들어낸 짙은 향기, 외로움의 품격
장석남 산문집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1. 07. 30(금) 00:00
그는 적적함 속에 꽃과 비와 볕이 있는 나날을 말한다. 땅 위에 무심히 떨어진 열매에서 햇빛과 바람의 일을 떠올린다. 그가 자연과 시의 세계를 누비며 발견한 문장들로 그 풍경을 그려냈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의 장석남 시인이 낸 산문집이다.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란 제목을 단 산문집은 2008년 출간한 '물 긷는 소리'에 새 옷을 입혀 나왔다. "오래전부터 없는 듯 있었던 시간의 퇴적층 아래에 묻힌 나의 흔적들"을 담아낸 산문집으로 옛 책과 음악이 주는 향취와 더불어 변치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나누고 있다.

시인은 어떤 사물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돌멩이가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돌에 무엇을 새겨 넣는 일에 몰두한다. 잊고 싶은 것이 많을 때는 돌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누군가 쓸데없는 일에 들어선다고 나무란다면 시인은 이렇게 답한다. "쓸데 있는 일치고 그 가치가 오래가는 일은 별로 보지 못했다."

모과 향기와 함께하는 공간을 체험하며 그가 써 내려간 글은 상처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문학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어느 날 길가에 뒹구는 상처난 모과를 주워왔다. 짙은 자주색의 상처 때문에 버림받았을 모과는 온 방을 물들이는 향을 뿜어냈다. "이 향기는 상처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것이리라. 상처가 향기를 짙게 만들어낸다."

그는 문학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으로 옛 책을 꼽는다. 완고하게 굳어지는 나이의 힘 탓에 점점 문학 토질이 거칠어질 수 밖에 없지만 좋은 책들은 그것을 갈아엎게 해준다고 했다.

음악도 시인의 일부를 이루는 존재다. 브람스, 비제, 말러, 므라빈스키 등 그가 듣는 음반들은 "춥고 외롭고 쓸쓸한, 그러나 높은 저 외로움의 품격"으로 이끈다. "침묵이 바로 깊은 생각의 대지이고 지혜의 대지이다. 음악도 침묵을 대지로 삼지 아니한가." 마음의숲.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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