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표 박사와 함께하는 한라일보 인문역사 강의] (12·끝) 탐라순력도
순력도 기록화 유일… 오시복의 역할은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0. 11. 24(화) 00:00
탐라순력도 한라장촉. 목장·산악·도로·마을명·하천 등이 표기돼 있다.
순력 장면 28면 등 41면 그림
이형상 ‘탐라록’ 속 오씨 어른
“글씨 요청” 배경 연구 필요
제주전최·제주사회 바뀐 듯
해체작업 중 속오군적부 발견

탐라순력도는 1702년(숙종 28) 10월 29일~11월 19일(21일간) 제주목사 이형상이 각 고을을 순시하며 거행했던 행사 장면을 기록한 채색화첩이다. 현재 제주시 소유로 국립제주박물관이 관리 소장하고 있다.

화공 김남길이 그린 것으로 41면 그림과 서문 2면으로 구성됐고 각각의 폭 하단에 간략한 설명 기록이 담겼다. 순력 내용은 28면이고, 나머지 11면은 순력과 관계 없는 내용의 평시 행사, 2면은 한라장촉과 호연금서다.

서문을 지은 일자는 1703년 음력 5월 13일이다. 순력 다음 해에 화첩으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순력도라는 이름의 기록화로는 유일하다.

최근에 번역된 이형상의 '탐라록'에는 기존 탐라순력도 서문과 다소 다른 대목이 있다. "오씨 어른께 글씨를 요청해 비단으로 장식하여 일첩을 만들고는 탐라순력도라 이름 하였다"는 내용이다. 오씨 어른은 당시 대정현 감산리에 유배왔던 오시복을 말한다. 오시복은 허적과 가까운 남인 계열로 호조·이조판서를 역임한 거물이었다. 이형상은 목사 재임 중 오시복과 간찰을 주고 받았고 결국 이 때문에 파직당한다. 이 내용대로라면 오시복이 탐라순력도 글의 전문을 지은 건지, 제주목사 이형상이 글을 짓고 오시복이 글을 쓴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학계에서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할 것이다.

탐라순력도에 지명이 들어간 그림은 제주 4점, 대정 4점, 정의 3점, 별방 2점, 명월 2점 등 36점이다. 탐라순력도 지역은 3읍 9진성 2섬인데 관할구역 그림은 35점(제주목 17점, 정의현 9점, 대정현 9점), 비관할 구역은 6점이다. 주제별로 분류하면 군사, 강사, 양로, 봉진, 명승 탐방 등으로 나뉜다.

탐라순력도를 대표하는 그림은 한라장촉(漢拏壯?)으로 목장·산악·도로·마을명·하천 등이 표기되어 있다. 승보시사(陞補試士)는 제주목사 이형상이 시관을 맡아 12명이 응시해 2명이 급제한 내용을 담았다. 공마봉진에는 말 433필, 흑우 20수를 올려보내는 내용이 나온다. 감귤봉진(柑橘封進)에서는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10일 간격으로 20운(20회) 나눠서 행한 귤 진상 내용이 들어있다. 귤림풍악(橘林風樂)에서는 제주읍성 안에 소재한 6개의 과원이 확인된다. 교래대렵(橋來大獵)은 사냥놀이가 아니라 진상용 사냥 수렵 장면을 그렸다.

제주전최(濟州殿最)는 제주목사가 관하 각 관리의 치적을 심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림의 내용은 관덕정에서 활쏘기 대회인 사회(射會)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반면 제주사회(濟州射會)에는 제주 삼읍의 모든 관리들이 정렬해 있다. 활쏘기 대회를 묘사한 게 아니라 제주 관내의 관리들에 대한 근무 성적을 평가하는 듯한 그림이다. 이 때문에 제주사회 그림이 제주전최로, 제주전최 그림이 제주사회로 제목이 바뀐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제주전최엔 관덕정, 상아, 목관, 감영(우련당, 영청, 상아, 망경루, 외대문·중대문·내대문, 협문, 애매헌, 군관청, 군기고, 마방, 과원) 등 제주목관아 건물이 상세하다. 제주목관아가 복원될 때 큰 역할을 했던 그림이다. 제주조점(濟州操點)에도 제주성 운주당, 모흥렬, 연무정 등 제주읍성 안 관아건물이 상세히 표시되어 있다.

고원방고(羔園訪古)는 지금의 서귀포시 강정동 용흥 마을 염돈 과원을 그렸다. '귤이 있는 동정호와 매화가 있는 서호 경치가 함께 있는 곳'이란 표현은 백호 임제의 '남명소승' 이후 남사록(김상헌), 탐라지(이원진), 남환박물(이형상) 등에 재인용됐다. 병담범주(屛潭泛舟)는 오늘날 용연인 취병담(翠屛潭) 뱃놀이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용두암 부근 해녀들의 잠수 작업 광경이 보인다.

한편, 2000년 탐라순력도를 보수하기 위해 해체 작업을 하던 과정에 제주속오군군적부가 발견됐다. 탐라순력도를 제작할 당시 배지(背紙)로 사용했던 낱장에 기록되어 있던 것으로 조선 숙종 때 정군이 아닌 속오군(예비군)에 대한 군적부다. 직역, 이름, 나이, 부친명, 소속 고을, 거주지, 얼굴 모습, 수염 상태, 흉터, 기예가 기록된 고문서로 이를 통해 그 시기 제주의 방어 체계와 사회제도를 탐색할 수 있다.

*강의 영상은 한라일보 유튜브 채널(촬영·편집 박세인 기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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