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수풀 찾아 죽은 자와 산 자를 위로하다
31일 4·3 72주년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 열려
눈물로 쌓인 한 쏟아낸 희생자 유족 "고맙습니다"
제주큰굿보존회 위령굿과 현장 증언·시·노래·춤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0. 10. 31(토) 18:12
제주큰굿보존회 서순실 보유자가 31일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에서 초감제를 집전하고 있다. 이상국기자
굿판이 열리자 금악리에서 왔다는 박모 할머니(89)는 관람석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영혼영신님네"를 부르며 영가를 달래는 심방의 사설이 이어지는 동안 할머니의 울음 소리는 더 커졌다. 제주도 주최, 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형) 주관으로 31일 오전 10시부터 제주시 한림읍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서 열린 4·3 72주년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 가슴에 쌓인 한을 쏟아낸 뒤 주최 측에 "고맙다"는 말을 전한 박 할머니는 영혼들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빌며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4·3 당시 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가 희생됐고 자신도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할머니였다.

2002년 구좌읍 다랑쉬굴을 시작으로 제주 곳곳 4·3학살터에서 해마다 펼쳐온 해원상생굿 열여덟 번째 행사가 한림에서 진행됐다. 2019년 나온 '제주4·3사건추가진상보고서 Ⅰ'에 따르면 거주지 기준 한림면 4·3희생자는 총 1037명이다. 한림리 일대에선 한림국민학교, 한림지서로 끌려가 구금, 취조, 고문을 당한 뒤 한림리 물왓, 묵은오일장 터, 한림중학교, 동명리 신겡이서들(미모루동산), 대림리 붕근굴(봉근굴)에서 총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온라인을 중심으로 치러온 제주민예총의 제27회 4·3문화예술축전 프로그램이 어렵사리 현장에서 마련돼 발길을 모았다. 굿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청중들과 교감했던 이 자리엔 한림읍은 물론 중문·대정 지역 유족들이 방문했고 서울의 대안학교 성미산학교 학생 10명도 교사들과 동행해 참관했다.

이날 해원상생굿은 학살터에서 소리쳐 혼을 불러내고 모셔오는 초혼풍장 일행이 행사장에 도착하면서 막이 올랐다. 서순실 보유자가 이끄는 제주큰굿보존회의 초감제, 희생자 유족인 명월리 강순아 할머니의 증언, 이종형 시인의 '각명비' 낭송 시 보시, 싱어송라이터 최상돈의 창작곡 '그리운 옛 님-한수풀 바람(願)' 노래 보시, 마로의 '순지오름 꽃놀이' 춤 보시, 서천꽃밭 질치기가 이어지며 때로는 눈물로, 때론 신명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위로했다. 제주큰굿보존회는 굿판을 찾은 이들을 위해 소박한 음식 나눔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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