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76)영어회화(박노해)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0. 09. 17(목) 00:00
누나는 못 배워서

무식한 공순이지만

영석이 너만은 공부 잘해서

꼭 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하지만 영석아

남위에 올라서서

피눈물 흘리게 하지는 말아라

네가 영어공부에 열중할 때마다

누나는 노조에서 배운

우리나라 역사가 생각난다

부유층 아들딸들이 유치원서부터

영어회화 교육에다

외국인 학교 나가고

중학생인 네가 잠꼬대로까지

영어회화 중얼거리고

거리 간판이나 상표까지

꼬부랑글씨 천지인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도

영어회화쯤 매끈하게 굴릴 수 있어야

세련되고 교양 있는 현대인이라는데

무식한 공순이 누나는

미국 전자회사 세컨 라인 리더 누나는

자꾸만 자꾸만 노조에서 배운

우리나라 역사가 생각난다

----------------------------------------------------------------------------------

군정시대에 일어났을 뿐더러 미군정의 잘못된 정책에 비롯되었다. 모든 것이 미군정에 의해 이루어졌음의 미군정 보고서 등의 미국문서에 입증되고 있다. 4·3 당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그들은 요직에 발탁되었다. 1984년 '노동의 새벽'을 펴낸 박노해는 노동자 시인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 1993년 '참된 시작'에서는 미국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20세기에는 사회주의혁명을 꿈꿨으나, 21세기에는 '사람만이 희망'인 사회가 오기를 꿈꾸고 있다. '박노해'란 이름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뜻한다. 1978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해고·수배·지하조직 등 산전수전 다 겪은 후, 1991년 안기부에 구속되어 무기징역 형을 선고 받았다. 특사로 출옥할 때까지 8년간을 0.75평 독방에서 지냈다. 감옥 안에서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 소리여야 한다'는 정신적 변화를 겪었다. 4·3의 둥근 소리도 존재할까?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문화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