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61)각명비-허유미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0. 06. 04(목) 00:00
내려다보면 읽히지 않고

엎드리면 읽히는 이름들이 있다



동에서 서로 기억해야 할지

땅에서 하늘로 기억해야 할지

기억해두기 전 까마귀 울음과 함께

흩어져버릴 것 같은 이름들이 있다

봄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이름들

새벽이면 젖은 몸으로 다시 돌아와

빈 요 위에 누울 것 같은 이름들

천 개의 손으로 쓰다듬어 읽어야 할 이름들이 있다

읽고 나면 겨울이 온 육신을 누른 듯

뼈마디가 시린데도 양지로 몸을 돌릴 수 없다



물결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이름들로

4월 풍경이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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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래로 영웅만을 기념하던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민초들의 역사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4·3평화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인권기념공원이다. 무엇보다 희생자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각명비(刻銘碑)와 위패(違牌), 시신을 찾지 못해 묘조차 만들지 못한 행방불명인 표석들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역사임에도 가슴 찌르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는지 각명비에 이름이 새겨진 희생자만 무려 1만 4000여 명에 이르고 행방불명인 표석은 3700여 개에 이른다. 실제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도민은 3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생자의 이름과 성별, 연령, 사망일시 등이 새겨진 각명비를 천천히 지나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덜컥 멈춰 서는 순간이 있다. '○○○의 자'라고 적힌 1세의 남자아이. 세상에 나온 지 며칠이나 됐을까. 이름도 채 가질 새 없이 그대로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그 아이가 너무나 가여워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시인 이종형도 그의 시 '각명비' 마지막 연에서 "4·3 평화공원/각명비 위에 내려앉은 산 까마귀 한 마리가/검은 부리로 톡톡,/그 겨울의 이름들을/다시 새기고 있다."고 읊고 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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