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12)강요배
유기체로 살아나는 자연의 색, 저리도 곱고 아름다울까
편집부기자 hl@ihalla.com입력 : 2020. 06. 01(월) 00:00
‘제주민중항쟁사전' 4·3 대중화
‘금강산과 DMZ전’엔 분단 현실
문화발전 유공자로 옥관훈장

#비무장지대 DMZ… 67년 간 막힌 남북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 지대란 전쟁, 분쟁 상태 혹은 정전 상태에 있는 둘 이상의 국가(또는 군사 세력, 동맹) 사이에 평화 조약, 휴전 협정 등에 의해서 설치된 군사 활동을 금지하는 지역이다. DMZ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군사 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을 그었다. 1953년으로부터 2020년 현재까지 무려 67년 동안 갈 수 없었던 산하가 되었다.

시간을 뒤로 돌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열렸다. 휴전협정문의 공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협정문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작성되었으며, 유엔군 사령관 미육군 대장 클라크(M.W.Clark)를 대리하여 유엔군측 수석대표 미 육군 중장 해리슨이, 그리고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과 펑더화이(彭德懷)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대리하여 북한측 수석대표 북한 인민군 대장 남일이 서명했다. 당시 남한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이 아닌 휴전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하여 휴전협전 당사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이날 협정 조인에 따라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만들어졌으며, 휴전협정을 감독하기 위해 군사정전위원회의 본부가 판문점에 설치되었고, 스위스·스웨덴·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 등 4국이 중립국 감시위원단도 구성되었다. 남북은 분단 속에서 연평도 포격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 해전, 북핵, 미사일 시험, 주한미군, 평화협정, 사드 방어체계, 키 리졸브 훈련, 개성공단 폐쇄,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 등 그야말로 숨가쁜 정치적 긴장이 휴전상태의 남북을 여전히 불안케 하고 있다.

강요배 근영. 2020년 5월 귀덕2리.
#과거 4·3과 미래 통일이 중첩되는 공간

강요배의 '금강산과 DMZ 전'이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석달 동안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00년 'DMZ 답사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작품들과 2007년 금강산 재방문 기간 동안 스케치한 작품, 캔버스 작품 2점이 전시될 예정이어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연일 멈춰버린 미술전이 재개되는 것에 반갑기도 하다. 또 제주에서, 갈 수 없는 땅 북한을 생각하며 분단의 현실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사뭇 새롭다. 이 개인전에서는 지난 해 그린 '구룡폭3', '중향성' 등 대작 2점과 '덕흥리 고분 여인', '북녘 사람들', '잠자는 남자' 등 인물 드로잉, 그리고 '만폭동', '금강산 전망대에서', '오성산', '건봉산 전망' 외 금강산 풍경 드로잉 작품 등 총 56점이 전시되며, 이 밖에 답사 당시 기록이 담긴 지도와 메모장 등이 함께 전시된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의 의미를 돌아보자. 1947년 3·1절 대회 때 제주도민들이 "3상회의 결정 즉시실천,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3·1정신으로 통일독립 쟁취하자"라는 슬로건을 주장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강요배의 'DMZ와 금강산'전의 상징성을 알 수 있다. 한라산과 백두산 중간이기도 한 금강산은, 봉래산(蓬萊山)이라는 이름으로 한라산[瀛洲山], 지리산[方丈山]과 더불어 중국 고대사의 유명한 삼신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반도 역사에서 이 삼신산 모두 마치 징검다리처럼 4·3, 여순항쟁을 지나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사건의 장소로 오늘의 분단상황과 직결되고 있다. 이 'DMZ와 금강산'은 "과거 '4·3'과 미래 '통일'"이라는 사건의 만남이 중첩되는 공간으로써, 앞으로 한반도 평화의 실현이 이루어져야할 곳, 그래서 하루바삐 종전이 선언되고 외세 개입의 무풍지대가 돼야 할 곳이다.

강요배, 만폭동, 종이에 콘테, 수채, 1998년.
#만물은 서로가 유기체… 생성 미학 담겨

강요배는 1952년 제주시 삼양 사람으로 서울대 서양화 석사를 졸업한 화가이다. 작고한 형이 일찍이 꽃 나무에 조예가 깊고 그림을 잘 그려 그 기운을 받아 어려서부터 꽃과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것들의 그림을 잘 그렸다. 화가의 어머니는 강요배의 어릴 적 그림들을 궤속에 차곡이 보관해 두어 후일 화가에게 그 작품을 남겨주었다. 강요배는 군복무 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특별 휴가를 와서는 입관전까지 두문불출하여 청룡·백호 주작·현무 사신도 넉장을 그려 어머니 관속의 지킴이 사령(四靈)으로 삼았다. 젊어서 문학에도 소질이 있어 카프카, 카뮈, 사르트르를 탐독했고, 철학에도 관심이 깊어 후설, 하이데거, 칸트, 노자, 주역, 화이트헤드,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 동서양의 철학들을 두루 꿰었으며, 물리학, 생물학, 천문·지리에 능해 우주의 운행과 별의 생멸(生滅)을 알고 자연·만물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유행하는 철학이나 떠도는 이념에 대해서는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판단을 중지하여 함부로 취하지 않았다. 음악의 율도 좋아하여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어 부르는 것, 리듬의 흥취도 누린다. 강요배를 보면, "살아있는 따뜻한 씨(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매일 아침 죽은 돌 부스러기들을 새로이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철인의 말이 떠오른다.

강요배, 수직 수평면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호, 2018년.
그간 강요배의 대표적인 개인전으로는 1972년 제주도 대호다방에서 개인전 '각'을 시작으로, 1992년 '제주민중항쟁사전'으로 4·3이 어떻게 은폐되고 금기시되었는가를 세계에 알리면서 4·3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1994년 '제주의 자연'전을 계기로 아름다움이란 자연이든 사회에서든 사람 가까이에서 숨 쉬는 삶의 공동체와 연관돼 있음을 발견하며 한국 풍경화의 새길을 열었다. 1999년 '금강산'전은 금강산의 유서 깊은 장소와 자연을 그려서 한국 회화사의 전통에 빛나는 단원과 겸재의 화풍과 견줄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땅의 스민 시간'전에서 물빛, 하늘빛, 자연의 빛이 저리도 곱고 아름다울 수 있는까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며, 2011년 '스침'전에서는 존재하는 것에 스치면 촉감의 감각을 느끼도록 바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2016년 '소리'전에서는 바다의 깊은 울림, 암벽을 치고 도는 거대한 힘의 굉음을 교황곡의 리듬으로 들려주었다. 2016년 이중섭미술상 수상 작가 '강요배 초대전'에서는 실크로드의 풍정(風情), 제주신화의 단순한 비구상, 공재의 초상을 측면으로 바라봄으로써 상상력이 더 실체적 깊이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8년 '상(像)을 찾아서'에서는 천기(天氣)와 일기(日氣)의 변화무쌍함, 너무나 일상적인 정물들, 무심히 있는 터, 고양이, 봄, 겨울, 철새 등 늘 일어나는 현상과 오가는 생물들이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아 마치 그것들이 이 세상에 없는 것인양 잊혀진 것들을 그려냈다.

지금까지 강요배는 개인전 17회, 국·내외 단체전 149회, 수상으로는 1998년 민족예술상, 2015년 27회 이중섭미술상, 2018년 그 간의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가에서는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선정해 옥관문화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우리는 하늘로 둘러진 땅 위에 살고 있어 그 음양의 기운이 함께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음양을 구성하는 육기(六氣) 때문에 혼란스럽게 된다. 이 여섯 가지 기운은 한(寒, 추움)·서(暑, 더움)·조(燥, 메마름)·습(濕, 축축함)·풍(風, 바람붐)·우(雨, 비뿌림)인데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일반적인 현상에 해당한다. 육기의 이런 현상들은 개인에게는 창작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강요배의 작품은 인상주의나 추상표현주의가 아니라 그것의 두 요소가 유기체처럼 그 공간 속에 파고들어 행위 표현마다 촉각으로 살아나는 생성(Becoming)의 미학이다. 자연에는 구상과 비구상이 태극처럼 동시에 서로 물려있기 때문에 생성은 곧 움직이며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만 유기체로 살아난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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