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주 자연을 그리는지 끊임없이 묻습니다"
갤러리 이디 개관기념 초대전 채기선 작가와 관객 만남 진행
"해녀·한라산 제주 유전자 품어… 음악은 작업의 또 다른 동력"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0. 05. 31(일) 15:30
'한라산의 화가'로 불리는 채기선 작가가 지난 29일 갤러리 이디에서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상국기자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빚어낸 명상적 음악이 그의 휴대전화를 통해 전시장에 퍼졌다. 아르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이었다. 입구에 걸린 푸르른 화면의 '한라산-이어도를 꿈꾸다'가 탄생한 배경이라고 했다.

"제 캔버스는 음악의 떨림을 갖고 있습니다. 작업 동안에 틀어놓는 음악에 대한 느낌이 그림에 투영되기 때문이죠. 말러의 교향곡 '부활'을 들으면서 그렸던 그림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29일 오후 3시 한라일보 1층 갤러리 이디(ED)를 찾은 채기선 작가. 경기도 양평에 살고 있는 그가 초대전 '제주, 제주 너머'를 기념해 관람객들과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멀리 서울에서 걸음을 하는 등 20여명이 함께했다.

제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수십 년 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채 작가는 한라산을 그리게 된 계기, 색채의 변화, 창작의 원천 등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1시간 넘는 만남을 이어갔다. 그지없이 평온한 화면이지만 그 여정에 시련이 배인 사연도 털어놓으며 청중들을 작업실 안으로 이끌었다.

그는 작고한 두 스승 김택화, 변시지 선생의 이름을 꺼냈다. 김택화 작가를 통해 제주 자연에 대한 표현법을 연마했고 대학 시절 변시지 교수의 미학 강의를 들으며 가슴 뛰었다는 그다. 1985년부터 야외 스케치에 나선 채 작가는 30대 초반에 이미 유화 1000여 점을 완성했다. 구상회화가 구시대적이고 장식적 미술이라며 '강력한 태클'을 걸어오고 작업의 방향이 흔들릴 때면 그는 스스스로에게 '왜 제주 자연을 그리고 있는가'를 물었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옷'은 구상 작업이고 제주 자연 그 자체가 감성의 밑바탕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진채기선 작가가 지난 29일 갤러리 이디에서 관람객들과 만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상국기자
"할머니가 해녀였고, 어머니가 해녀였어요. 상군해녀인 어머니는 흑산도로 물질을 갔는데 뱃속에 제가 있었죠. 어머니를 따라 파도소리와 숨비소리를 듣고, 애기구덕에서 반짝이는 물빛을 봤을 겁니다. 저는 완전한 제주 유전자를 품은 화가인 거죠."

30대 시절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대작들로 서울 인사동 개인전을 다섯차례 갖는 등 제주를 뛰어넘으려 했던 그는 10년 전에 또 한번의 변화를 위해 북한강변으로 거처를 옮겼다. 1996년 2월 신선이 놀다 떠난 붉은 한라산을 선물처럼 받았던 제주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한 양평 살이는 혹독했다. 연꽃으로 펼친 개인전의 이면엔 그 아픔이 있었다. 채 작가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고 봄이 되어 나타난 꽃들이 없었다면 그 시기를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고 회상했다.

'제주 너머'의 작업은 그에게 한라산을 새롭게 풀어내는 전환점이 되었다. 한달에 한두 번 고향에 오며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한라산, 제주항에서 마주한 한라산은 그에게 기적같은 장면을 보여줬다. 어느새 그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한라산을 그리고 있었다. 채기선 작가 등 '제주, 제주 너머'의 그림들은 7월 17일까지 갤러리 이디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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