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린치 신부 열정바친 성이시돌복지의원 '운영난'
"개인 후원자 절실해"…가난한 이웃에 무료 호스피스 제공
연합뉴스 기자 hl@ihalla.com입력 : 2020. 01. 24(금) 15:30
환자와 대화하는 생전의 맥그린치 신부(왼쪽) 모습 .
탁 트인 전망의 목장과 이국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아치형 건축물 '테쉬폰'.

빼어난 관광지인 제주 이시돌 목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나 목장 설립 정신을 실현하는 '성이시돌 복지의원'에는 정작 관심과 후원이 줄고 있다.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이시돌 목장을 일군 고(故) 맥그린치 신부(한국명 임피제·2018년 4월 23일 선종)가 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정성을 쏟은 곳이다.

한 해 전체 운영비 7억∼8억원 중 기부금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맥그린치 신부 선종 이후 1년여간 점차 관심이 줄어들어 1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끊겼다.

때마침 이시돌목장을 운영하는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가 적자 경영을 겪으면서 복지의원에 대한 지원도 줄고 있다.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1971년 '성이시돌 의원'으로 설립해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왔다.

그러던 중 맥그린치 신부가 강조한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 2002년 3월에 15병상 규모의 무료 호스피스 중심 성이시돌복지의원을 재개원해 삶의 끝자락에 선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고 있다.

호스피스란 임종기의 노인이나 말기 암 등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입원 시켜 불필요한 연명 치료보다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보호를 중심으로 심리적 안정을 꾀하도록 돕는 시설이나 활동이다.

맥그린치 신부도 선종 전까지 성이시돌복지의원에 거처하면서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이들과 함께했다.

현재 15개 병상에 12∼13명의 말기 암 환자가 무료로 돌봄을 받고 있다. 성이시돌복지의원은 환자의 심리적 치료를 위해 환자가 원할 경우 가까운 보호자를 복지의원에서 생활하며 환자를 돌보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의원의 운영난이 심화하면서 마땅히 갈 곳 없이 마지막 삶을 준비하는 이들이 외롭고 고독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다.

성이시돌복지의원 원장 홍종숙(이사벨) 수녀는 "기업의 경우 후원이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개인 후원자들의 후원이 재정 자립도를 좌우한다"면서 "소액 후원자가 늘어 보다 많은 환자가 호스피스 도움을 받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장 수녀 등은 제주도 내 성당을 돌며 후원금을 마련하고 있으나 계속된 운영난을 채우기에는 한계가 많은 실정이다.

그 때문에 일시적인 후원보다는 꾸준한 소액 후원이 절실하다.

홍 수녀는 "일회용 커피 한 잔에 너무나 기뻐하고 행복해했던 한 할머니가 지난해 여름 복지의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면서 "일회용 커피나 차 한 잔 살 수 있는 작은 액수의 돈이더라도 복지의원에서는 큰 행복으로 자라나는 기적이 일어난다"며 복지의원에 후원을 바랐다.

후원을 원하는 이는 성이시돌복지의원(☎064-796-2244/7244)으로 전화해 후원 절차를 문의하거나 성이시돌복지의원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sidorehospice.kr)를 통해 후원 신청을 하면 된다.

◇ 맥그린치 신부는

192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맥그린치 신부는 1953년 선교의 부름을 받고 부산을 통해 한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한국에 온 이듬해인 1954년 4월 제주 한림 본당에 부임해 제주와 인연을 시작했다.

1955년 7월 신자들과 마을 어귀 팽나무 아래 성당을 짓고 지역 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마을주민과 함께 양돈업을 시작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인천에서 새끼를 밴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사들여 한림까지 가져왔고 이 돼지는 훗날 연간 돼지 3만 마리를 생산하는 동양 최대 양돈목장의 기초이자 제주 근대 목축업의 기반이 됐다.

또 1957년 4-H 클럽을 조직해 닭과 토끼, 개량 돼지를 들여와 사육하고 무이자로 가축을 빌려주는 가축은행을 만들었다. 4-H 클럽은 이후 성이돌목장의 모태가 됐다.

1961년엔 축산업 교육과 업체 설립을 위해 손수 해외원조를 따냈고 축산 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선진 기술을 도입했다.

1964년 사료공장, 1959년 한림수직 등을 설립해 지역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익은 지역에 환원했다.

당시 이시돌목장을 가꾸며 임시 거처로 지은 집이 테쉬폰이다. 현재는 관광명소가 됐다.

테쉬폰은 곡선 형태의 텐트 모양과 같이 합판을 말아 지붕과 벽체의 틀을 만들어 고정한 후 틀에 억새, 시멘트 등을 덧발라 건축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지어진 집이다.

맥그린치 신부가 고향 아일랜드에서 건축 기술을 배워 1961년 4H 회원과 함께 이시돌목장의 주택인 이시도레하우스를 만든 뒤부터 1963년 이시돌목장의 사료공장, 1965년 협재성당, 1970년대 돼지우리 등을 테쉬폰 방식으로 건축했다.

제주에 근대적인 목축업과 신용협동조합 등을 처음 도입하며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 온 맥그린치 신부는 지역 복지를 위해 의원과 요양병원 등을 설립해 운영했다.

그는 2018년 4월 23일 선종 전까지 성이시돌복지의원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헌신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2014년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2015년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받았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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