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40)
편집부 기자 hl@ihalla.com입력 : 2019. 11. 28(목) 00:00
강준 작/고재만 그림

13-4. 하나도 프로젝트



짙은 향수 냄새에 버무려진 술 냄새가 달콤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찰나에 문이 열리며 금산이 들어왔다. 둘이 엉켜 있는 상황을 목도한 금산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잠시 멈칫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즈니스 룸 베이징으로 갔으나 한참을 기다려도 왕금산은 나타나지 않았다.

"왕 회장님, 조금 늦는다고 전해 달래요."

정소영은 이미 취한 듯 혀가 꼬부라졌다.

"초저녁부터 이러고 애들 관리하겠어?"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혼자 한잔했어요. 헌데 그날 이후로 어쩜 전화 한 통 없어요?"

용찬은 '그날'이라는 말을 생각해 봤다.

소영을 마지막 본 것이 금산을 만났던 날이다. 금산이 고꾸라져 업혀나간 다음에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고 아침에 일어난 곳은 예의 그 호텔이었다. 그런데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데 바닥에 앙증맞게 도사리고 있는 자그마하고 야한 여자 팬티를 발견했다.

'이거 왜 여기 있지?' 생각해 내려 했으나 어디서부터 필름이 끊겼는지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우리 호텔 같이 갔었나?"

"어머 첫사랑을 닮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날 꼬실 땐 언제고. 이젠 싹 잡아뗄 거예요?"

용찬은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그날 왕 회장 호출이 없었다면 해장국도 같이 먹었을 텐데."

소영은 술을 따르며 용찬에게 눈을 곱게 흘겼다.

"헌데 이 집에 제주도 출신 아가씨 있지?"

"제주 출신? 그런 애 없는데."

"서른 두어 살 됐을 거고. 잘 생각해봐."

"서른 살 넘으면 룸 못 넣어요. 아! 있다. 주방 보조 언니. 그런데 왜요?"

"우리 후배 어릴 적 친구가 있다고 해서."

"그 예쁜 미란 언니? 그 언니 젊은 나이에 참 안 됐어요."

소영은 위스키 잔을 입에 털어놓고 다시 잔을 채웠다.

"왜?"

"남편 잘못 만나서 빚만 덤탱이로 떠안고 혼자되었대요."

"그래? 아직 젊잖아. 젊음보다 좋은 재산이 어디 있어?"

"빚쟁이들 때문에 수배 내려 육지도 못나가고 숨어 지낸대요."

"아니 어쩌다 그 지경까지 되었나?"

"사업하는 사람 잘못되면 보증 선 일가친척들이 전부 떠안게 되잖아요?"

소영이 다시 잔을 입에 가져가려 하자 용찬이 술잔을 빼앗으며 제지했다.

"무슨 술에 원수라도 졌어?"

"그 왕 돼지 새끼. 아 아니에요."

급하게 주어 담는 것으로 봐서 금산에게 맺힌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소영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얼른 화두를 돌렸다.

"헌데 왜요?"

"응?"

"갑자기 미란 언니 얘긴 왜 묻느냐고요?"

"응, 지난번 같이 왔던 그 후배 있잖아. 연락이 안 돼서."

"어머! 그럼 같이 잠수 탔구나. 미란 언니 그만둔 지 며칠 되었어요."

"그래?"

용찬은 일이 잘못 꼬여 간다는 생각을 했다.

"전 이다음에 사업하는 사람하곤 결혼 안 할 거예요. 큰돈 못 만져도 봉급쟁이가 좋아요."

말을 하며 소영이 슬며시 돌아다 봤을 때, 용찬은 소영의 말을 곱씹으며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했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람들과 부딪히고, 기사 잘못됐다고 쌍욕 듣기 일쑤고, 언론중재위에 불려가고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고, 툭하면 협박당하고. 참 어려운 직업이다.

"사람 옆에 앉혀놓고 무슨 생각해요?"

"응? 무슨 말 했지?"

"전 존경 받으면서 봉급 많이 받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구요. 망할 일은 없잖아요? 남한테 피해도 안 주고. 그래서 전 대학교수 같은 사람이 좋아요."

"헌데 나랑은 왜 같이 잤어?"

"연애는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잖아요. 좌우간 오빠가 좋아요."

소영은 정말 취했는지 용찬의 무릎 위로 몸을 옮기더니 목을 껴안고 진한 키스를 했다. 짙은 향수 냄새에 버무려진 술 냄새가 달콤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찰나에 문이 열리며 금산이 들어왔다. 둘이 엉켜 있는 상황을 목도한 금산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잠시 멈칫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용찬은 놀라서 소영을 뿌리치려 했지만, 소영은 용찬의 목을 놓지 않았다.

"보면 몰라요? 손님 접대하고 있잖아요."

그 소리에 금산이 참을 수 없었던지 다급하게 다가서더니 소영의 뺨을 후려쳤다.

"이 갈보 같은 조선족 년이. 예뻐해 줬더니 보이는 게 없구나."

"왜 때려. 이 새끼야."

소영이 벌떡 일어서며 금산의 빰을 갈기려 했으나, 금산은 손을 낚아채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소영은 소파에 쓰러지며 악을 썼다. 소영의 소리가 방음벽을 뚫고 밖으로 새나갔던지 지배인과 웨이터가 달려왔다.

"야. 넌 오늘부로 해고야. 이년 밖으로 끌어내!"

"왜 한족은 괜찮고 조선족은 돈 벌면 안 돼냐? 이 돼지 새꺄?"

소영은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끌려가면서도 악을 썼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용찬은 어안이 벙벙했다.

"나약한 여자에게 어떻게..."

용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산은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개소리 말고 거기 앉아 있어. xx놈아."

금산은 눈에서 살기를 뿜으며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골프채를 휘둘러 용찬을 갈겼다.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용찬은 통증과 함께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 배신자 새끼. 친구란 놈이 내 앞길 망가뜨릴 작정이었어?"




용찬은 기세에 눌려 고개를 떨구면서 자리에 앉았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진정하려고 술 한 잔 목으로 넘기고 안주를 집는데 문이 열렸다. 금산의 손에는 골프채가 들려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용찬이 어정쩡하게 일어서는데 금산이 골프채를 휘둘러 갈겼다.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용찬은 무릎이 꺾이며 통증과 함께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 배신자 새끼. 친구란 놈이 내 앞길 망가뜨릴 작정이었어? 이 개새끼야?"

분을 참지 못한 금산이 휘두르는 골프채는 용찬의 몸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용찬은 머리와 배를 부여잡으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너와 함께 왔던 그 새끼 짓이지? 그놈이 몰카를 설치한 거지? 그 x같은 새끼 잡으면 아주 아작을 내버릴 거야. 알아? 이 x새끼들아."

금산의 잔인한 폭행이 계속되다가 골프채가 휘었다. 용찬의 머리와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금산은 골프채를 내던지고 웨이터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야! 5번 아이언 가져와."

"알겠습니다. 형님"

구경하던 웨이터가 허리를 접었다 펴더니 잽싸게 뛰어나갔다.

"이 개새끼야. 널 얼마나 생각했는데 날 배신 때려? 넌 친구도 아니야. xx 놈아."

금산의 씩씩거리는 모습을 보기만 하던 지배인이 말렸다.

"형님, 참으십시오. 이러다 사고 칩니다."

"옛날 목포에서 다구리 붙을 때부터 알아봤어. 비겁한 새끼야. 너 내 밑에서 일하는 제주도민이 몇 명인 줄 알아? 수 백 명을 내가 먹여 살리는데 감히 내 앞길을 막아? 네가 제주도를 위해 하는 게 뭐야? 오늘 배신의 맛을 제대로 보여줄 거야. x새꺄."

금산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쓰러진 용찬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웨이터가 골프채를 가져오자 지배인이 말렸다.

"어디 신문에 나기만 해봐. 아주 죽여 버릴 거야."

용찬은 고통을 느낄 겨를 없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의식이 몽롱해져 갔다.



밝은 햇살이 눈을 간지럽혔다. 온몸이 욱신거림을 느끼며 간신히 눈을 떴다. 머리와 복부는 붕대로 칭칭 감겼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입술조차 움직이기 힘들었다. 팔을 들어보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눈앞에 희미하게 아롱거리는 물체에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이제야 정신이 드세요?"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시선을 집중하니 왕리화가 보였다.

"죄송해요.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리화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다정하던 오빠였는데, 사업을 크게 벌이고 부터는 괴물로 변했어요. 어떻게 친구를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어요? 죄송해요."

리화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용찬의 눈에 고인 눈물이 길을 열며 떨어졌다. 리화는 울면서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용찬의 눈물을 먼저 닦고서 자신의 콧물과 눈물도 닦았다.

"이제 곧 할머니와 어머니가 오실 거예요."

용찬은 걱정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나왔다. 리화는 손수건을 뒤집어 용찬의 눈가를 닦았다.

"오빠. 울지 마세요. 그리고 저 일본으로 아주 떠나요. 도쿄에 지사를 오픈해서 내가 책임 맡게 됐어요. 하지만 오빠 회복되는 거 보고 떠날 거예요. 저를 못 가게 하려고 마냥 누워 있으면 안 돼요. 오빠 알았죠?"

리화는 여유를 찾았는지 농담까지 했다.

"오빠 퇴원하면 꼭 한번 데이트하고 갈 거예요. 그러니 빨리 일어나셔요. 알았죠?"

리화는 용찬의 눈물을 닦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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