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몸의 암호를 해독하라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입력 : 2019. 08. 21(수) 00:00
"가슴이 찢어져요", "치가 떨려요", "털이 쭈뼛 서요", "역겨워요", "눈에 뵈는 게 없어요", "목이 메요". 이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 몸의 상태를 묘사한다. 둘째, 동시에 어떤 정서를 표현한다.

우리는 흔히 정서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차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정서란 우리 몸의 반응을 뇌가 해독한 결과이다. 즉,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몸의 감각은 슬픔으로, 이가 부르르 떨리며 턱에 힘이 들어가는 감각은 분노로, 털이 쭈뼛 서는 감각은 공포로, 역겨움은 혐오로 우리의 뇌가 변역한 것이 정서인 것이다. 정서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잊어버린 현대인들은 자기를 잃고 헤매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분노조절장애, 우울, 불안, 공포 등 현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많은 증상들이 정서와 관련이 깊다. 이런 정서조절의 문제에 대한 20세기의 치료법은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깊이 통찰하여 변화로 이끄는 상담치료와 화학적 약물요법이었다. 이는 증상 조절에 효과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증, 공황장애, 조울증, 분노조절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했다. 왜 그럴까?

이는 사회적·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유전적·환경적 차원을 모두 고려해야하는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이 모든 차원을 관통하는 공통 원인 중 하나는 몸에 대한 망각이다. 인간의 정수를 정신에 두고 몸은 그 정신을 담은 껍데기처럼 여겨온 잘못된 인식이 현대의 수많은 병리를 낳았다. 몸은 언제나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건만 우리는 몸의 신호에 둔감해졌다. 그래서 배부른데도 먹고, 취했는데도 마시고, 눈·목·어깨·허리·다리의 뻐근한 통증에도 게임하느라 일어날 줄 모르며, 눈·턱·팔·다리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호흡이 빨라지는데도 분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아가 가슴이 조여드는 우울과 공허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질병은 개체의 삶과 사회를 반영한다. 우울증, 공황장애, 조울증, 분노조절장애, 식이장애의 증가는 우리의 삶과 사회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과거에 비해 자해와 자살이 늘고 반인륜적·반사회적 잔혹 범죄가 증가하는 것 역시 우리의 삶과 사회의 병리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우울, 불안, 분노, 파괴적 충동, 망상, 환각, 중독, 회피의 정신병리에는 의식에서 배제된 무의식과 그 사회의 뒷골목 풍경이 암호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호화된 무의식의 저장고가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그러니 우리는 몸의 신호를 잘 알아차리고 풀어야 한다. 억압된 무의식을 외면하면 터미네이터처럼 더 강력하고 위협적이 되어 되돌아온다.

요즘 요가·춤·놀이·연주 등 몸을 매개로 하는 치료법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의 치료법이 지나치게 언어적이고 이성적인 면에 치우쳐 있었기에 이런 흐름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종종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고 조율하기보다 신비주의적으로 신체 감각에 몰두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있어 우려스러울 때가 있다. 몸을 중시하는 것이 이성과 과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몸의 신호를 잘 알아차리고 정서를 조절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무얼까? 바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자신의 몸을 가만히 느껴보라. 당신이 잊고 있던 몸의 감각을 찾아간다면 당신의 정서도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신윤경 봄 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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