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부실한 기념 반복 말고 살아있는 기억으로
최호근 고려대 교수의 '기념의 미래'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19. 05. 24(금) 00:00
홍해를 건넌 유대 민족의 수난사 등을 보여주는 두 기념일이 있다. 유월절과 초막절이다. 그것들이 수천 년 동안 지켜지고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호근 고려대 교수의 '기념의 미래'는 이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답은 이렇다. 그것들이 살아남은 비결은 그 속에 담긴 종교성, 밥상머리에서 부모와 자녀가 소리 내어 읽는 행위, 정신은 유지하되 방식은 시대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기를 거듭한 결과였다. 기념의례가 생생한 기억을 만들려면 메시지와 현장성이 있어야 하고 몰입과 헌신의 마음을 촉발하는 종교성이 있어야 한다. 공감을 이끄는 힘이 없으면 숱한 의례들은 '의례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전국 도처 갖가지 기념시설이 세워졌지만 기억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진단에서 이 책은 출발하고 있다. 갈증을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부실한 기념의 반복이다.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살아있는 기억을 맛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 아예 과거에 대해 무심해질지 모른다.

박제화된 의례를 벗어나 문화의 색을 입히고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는 저자는 국내외 주요 기념 시설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잃어버린 마을, 무명천 할머니의 집, 하귀리 영모원 등 제주 4·3에 얽힌 장소도 들어있다.

그는 4·3 발발 70주년이 지난 시점에 주목하며 유족들이 세상을 뜨면 누가 희생자들을 위해서 곡할 것인가, 애도를 연습할 기회를 갖지 못한 누군가가 한동안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다시 그 시간이 지나면 4·3평화공원은 행사를 치르기에도 민망한 장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그래서 4·3희생자가 기억되고 4·3이 기억되려면 기념의례에서도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제언을 덧붙였다.

최 교수는 한국발 기념문화의 비전을 제시했다. 전통의 샘에서 영감을 얻고 글로벌 기념문화를 면밀히 살피자고 했고 어두운 과거 속에도 사람 향기 넘치는 스토리 발굴과 가공에 나서자고 했다. 교육을 염두에 둔 전시 등은 세대 간 기억전승의 지름길로 꼽았다. 고려대출판문화원. 2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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