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4·3군경주둔소 조사 한상봉씨
"4·3주둔소 설치에 제주도민 고통"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19. 05. 02(목) 21:00
한상봉씨는 지역 주민 증언 등을 토대로 4·3 군경주둔소의 위치를 듣고 직접 현장 답사를 벌여 43곳을 찾아냈다.
마을 헐린 잣담이 조사 계기
2016년부터 3년간 현장 누벼

확인된 43곳 사진 더해 소개

시작은 잣담이었다. 그는 잣담을 연구하기 위해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에 들렀다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 잣담 몽땅 4·3 때 경찰 주둔소 쌓으멍 가져가비시네." 수백 미터의 잣담이 4·3 당시 주둔소 때문에 사라진 거였다.

그 길로 4·3주둔소에 대한 기록을 뒤져봤는데 알려진 곳은 4~5군데에 불과했다. 이미 1곳은 사라지고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조사에 나서야 겠다고 결심한 그는 마을 경로당과 가정을 방문하며 동네 주민들에게 위치를 듣고 중산간 목장과 한라산을 누볐다.

제주국제대 도서관 사서인 한상봉씨의 '제주 4·3시기 군·경 주둔소'가 묶인 배경이다. 저자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가량 집중적으로 현장 답사 등을 통해 확인한 기록이 담긴 책으로 제주4·3평화재단 4·3연구총서로 나왔다.

이 책에는 1948~1949년 군·경 주둔소, 1950~1952년 3월 중산간 마을·목장지 경찰 주둔소, 1952년 4월 이후 경찰주둔소 등 43곳이 사진 자료 등을 더해 소개됐다. 시대별 주둔소의 위치를 통해 토벌 작전의 전개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주둔소 대부분은 목장 지대에 있었는데 이는 무장대와 민간인 출입의 상·하한선이 되었다.

일일이 주둔소를 찾아 다니는 동안 저자는 지역 주민들의 출역 상황, 주둔소의 형태와 규모, 식수원 등에 얽힌 증언을 확보해 문답 형식으로 그 내용을 실었다. 증언자들은 주둔소를 설치하면서 지역민의 고통이 컸다고 털어놨다. 경찰의 요구에 의해 이장들이 담당 마을별로 이제 막 열살이 넘은 어린 아이에서 육십 노인들까지 동원했다. 마을이 재건된 해안마을이나 피해가 덜한 지역 등 예외가 없었다.

이처럼 힘겹게 쌓아올린 주둔소는 목장 돌담 등으로 이용되며 훼철, 훼손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밭담, 산담, 방풍용 돌담으로 쓰이며 헐리거나 도로 개설로 사라진 경우도 있다.

저자는 "주둔소 축성 날짜, 동원 지시 체계 등과 관련해 추후 관련 자료가 발굴되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도서출판 흥제.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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