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핫플레이스] (39) 일제강점기 제주의 항일 현장
섬 곳곳에 새겨진 100년 전 제주의 함성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입력 : 2019. 02. 28(목) 20:00
지난해 3월1일 제주시 조천읍 만세동산에서 열린 기미독립운동 99주년 기념 및 제26회 조천만세대행진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3·1독립운동기념탑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한라일보 DB
법정사·조천만세동산·해녀항일기념비 등 산재
학생·유림·해녀·어민·스님·민초들의 항일 흔적



"대한독립 만세!" 제주 섬 곳곳에 울려퍼진 그 날의 함성은 제주의 민초, 해녀, 어민, 스님까지 모두가 동참한 목숨을 담보한 큰 울림이다.

올해 3·1운동 100년을 맞는다. 제주에도 일제강점기 역사의 현장이 많다. 가열찬 항일운동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며 나라를 잃은 슬픔의 발로이자, 일제의 핍박에 대한 항거의 처절한 몸짓이다.

지난해 11월 추자도 추자교 입구에 세워진 추자도 어민대일항쟁 기념비
당시 제주에서 무오법정사 항일운동(1918), 조천만세운동(1919), 해녀항일운동(1931∼32) 등이 3대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에 일명 '천초사건'으로 알려진 추자도 어민항쟁도 빼놓을 수 없다. 3·1절 100주년을 맞아 제주 도내 산재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3·1운동보다 앞선 법정사 항일항쟁=3·1운동이 일어나기 5개월 전인 1918년 10월 7일 서귀포시 소재 법정사를 거점으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주지 김연일을 비롯해 강창규, 방동화 등 승려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주민과 힘을 합쳐 경찰 중문주재소를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무장항쟁 참여자만 700명으로 추정되는 큰 규모다. 사건 발생 이후에 66명이 검찰에 송치됐고 15명이 벌금형, 18명이 불기소 처분을 각각 받았고 이 가운데 3명은 옥사했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는 제주도 기념물이다. 현재 항일항쟁터 성역화사업을 통해 법정사의 잔해 등 유적을 보존하고 일대에 추모탑과 의열사 등이 세워졌다. 법정사는 한라산둘레길 초입에 위치한다.

▶독립만세의 '도화선' 조천만세운동=1919년 제주출신 유학생 김장환(당시 17세)이 서울 탑골공원의 만세 시위에 가담하고 그 '불씨'를 고향 제주에 전하며 시작됐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에 석축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
기미 독립선언서를 가슴에 품고 제주에 돌아온 그는 숙부 김시범 선생을 찾아갔고 14인의 동지를 결성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당시 제주 유림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던 김시우의 기일인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했고 조천리 미밋동산(만세동산)에 동지 14명과 거사동지 23인, 주민과 마을 서당생 150여명이 모였다. 여기에 주민 500여명도 동참했고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구좌읍 하도리 연두망동산에 세워진 기념탑
이어 제주 성내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옆 마을 신촌리에서 경찰에 막히며 당시 김시범 등 13인이 체포됐다. 이어 22일과 23일 석방을 요구하며 2·3차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24일에는 조천오일장을 맞아 부녀자까지 합세하며 15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1995∼2003년 조천 만세동산 성역화 사업이 이뤄졌고 추모탑과 육각정만 있던 곳에 제주항일기념관, 독립유공자 묘역, 기념광장 등이 들어섰다.

▶해녀항일운동과 추자도 어민항쟁=어족자원이 풍부한 제주에서의 수탈로 해녀와 어민들의 항쟁도 거셌다.

구좌읍 하도리 연두망동산에 세워진 해녀운동 주역 조형물.
해녀항일기념탑은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 남쪽에 위치한다. 이 곳은 1932년 일제의 수산물 수탈에 맞서 해녀 항일운동의 집결지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구좌, 우도, 성산 등 제주 동부지역 해녀 1만7000여명이 238회에 걸쳐 시위를 벌여 일제의 경제수탈 정책에 항거한 국내 최대 여성 항일운동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제주 최북단 섬 추자도에 추자어민들의 대일항쟁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추자교 옆에 세워졌다. 여기에 제주 최초의 '어민항쟁'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926년 5월 14일과 6년 후인 1932년 5월에 일어난 2개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전자는 당초 고가였던 천초(우뭇가사리) 사건이며 후자는 일본인이 삼치 유자망 내수면 어장을 침범해 추자어민이 총궐기에 나섰던 사건이다. 백금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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