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밭에서 자치와 공존의 가치 읽자"

고광민 등 조천읍 해안마을 바다밧 이름과 생활사 조사
"공동어로 시시각각 바다 대처… 공존 통해 지속가능 길"

진선희기자 / sunny@ihalla.com    입력 2019. 02.10. 16:15:31

바다식목일 기념행사가 열린 제주시 조천항에서 해녀들이 전복 종묘를 들고 바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시대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관문이던 조천은 7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이중에서 상동, 중상동, 하동, 중동 4개 해안마을의 바다밧(바다밭) 이름은 저마다 다르다. 상동의 대섬바다, 중상동의 개낭개바다, 하동의 남당머리바다, 중동의 새배바다가 있다.

수심이 낮고 잔잔한 대섬바다는 우미(우뭇가사리)가 많아 조천 전체 생산량의 3분의 2가 이곳에서 난다. 수심이 깊고 거친 남당머리바다와 새배마다에는 구젱기(소라), 전복, 해삼, 성게가 많다. 톳과 우미는 마을 별로 자기 바다에서 공동 채취, 공동 분배하지만 구젱기, 전복 등은 마을 구별 없이 모든 바다에서 자유롭게 캔다. 거친 바다의 상황을 합리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동 해녀들은 조합원의 수가 너무 적은 점을 고려해 톳과 우미를 개별 채취로 변경했다. 바다밧의 상황과 조합원의 사정에 따라 합의 아래 결정된다.

이같은 내용은 제주 민속학자 고광민씨가 제주학연구센터 지원을 받아 고승욱·박정근씨와 공동으로 펴낸 '제주 해안마을 바다밧 이름과 생활사 조사 연구'에 실렸다. 이 조사는 조천읍의 5개 해안 마을인 신촌·조천·신흥·함덕·북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르면 바다밧은 제주인들이 바다의 일터를 일컫는 말이다. 뭍의 밭과 달리 바다에서는 공동 어로가 행해졌다. 바다밧이 마을의 공유지이기도 하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공동 어로가 성공하려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했고 바다밧 이름은 그를 위한 첫 걸음이었다.

연구진들은 어촌계마다 전승되고 있는 바다밧이 자신의 이름을 통해 마을의 고유한 내력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해안마을의 해녀와 어민들은 마을 어장을 사유, 독점화하려는 유혹과 압력을 견뎌냈고 소유권자인 국가로부터 연안 해안의 이용권을 확보했다. 조합을 조직해 자치 규약을 만들고 준수했고 공존의 정신으로 바다 자원의 고갈을 막고 지속가능한 이용의 길을 이어왔다.

이번 보고서는 "국가와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며 일궈낸 제주의 바다밧은 '자치와 공존'이라는 제3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며 "향후 제주 해안 마을 전체 조사를 통해 '자치와 공존'의 온전한 윤곽이 그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