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중세 유럽역사 속 감초 '백만장자의 삶'

그레그 스타인메츠의 '자본가의 탄생'

백금탁 기자 / haru@ihalla.com    입력 2019. 01.18. 00:00:00

'대부호' 야코프 푸거 일대기
돈으로 신권·왕권 누른 상인
두둑한 배짱·인간미 돋보여

신권과 왕권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중세 유럽. 평민출신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가 그보다 더한 위력으로 교황과 황제 위에 군림하며 유럽 역사의 방향마저 바꾸는 커다란 힘으로 작용한다.

독일출신 '대부호' 야코프 푸거의 일대기를 그린 '자본가의 탄생'이 출간됐다. 언론인이자 투자분석가인 그레그 스타인메츠가 펴낸 책으로 원제는 '역사상 세계 최고의 부자: 야코프 푸거의 인생과 시대'다. 저자는 영어권에서조차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푸거의 삶과 그가 개척한 역사를 상세하게 소개한다.

은행가 푸거는 뛰어난 상술과 두둑한 배짱으로 당시 유럽 국가 총생산량(GDP)의 2%를 거머쥐는 등 유럽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실제 인물이다. 15~16세기 유럽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등장하는 '감초'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군소 가문에 머물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발호와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허용, 면죄부 판매와 종교 개혁, 복식 부기 발전과 전파 등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던 과정에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주요 사건의 이면엔 모두 푸거가 존재한다.

푸거는 초기엔 직물을 사고팔던 중개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채권방식 대출을 통해 거상으로 급성장한다.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 대신 수익성이 높은 사업의 권리를 받아내는 기발한 상술을 발휘한다. 대출 조건으로 은과 구리 광산 채굴권과 소유권을 얻는 방식을 통해 부를 쌓았는데 그 수완이 비범하고 배짱이 두둑하다.

구리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얻으며 종교 지도자와 군주를 막후에서 주무르는 실력자 재벌로 부상한 푸거. 그는 이번엔 본격적으로 로비 활동에 나선다. 이자 부과와 고리대금을 금지한 교회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쳐 성서의 해석마저 바꾸는 믿기 어려운 힘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주교와 귀족은 물론 교황 레오 10세에까지 서신 등을 통해 로비의 손길을 뻗친다. 이를 토대로 현대 은행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심지어 면죄부(면벌부) 판매와 종교개혁 이면에도 푸거의 손이 닿았다. 푸거는 공산주의로부터 유럽을 지켜낸 상징적 인물로도 통한다. 광산업과 대금업에 이어 금융 표준을 만들고 언론 사업에까지 진출하는 현대 재벌의 원형을 보여준 인물이다.

종교와 정치 권력이 현재보다 더욱 강력했던 중세에도 돈으로 모든 것을 지배한 푸거는 자본가의 표상이자 역사상 최대 재산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부제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로 함축된다. 부키(주), 노승영 옮김. 1만8000원.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