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909건 판결문에 생생한 혈연 해체의 현장

법조 기자 출신 박민제의 '가족끼리 왜 이래'

진선희 기자 / sunny@ihalla.com    입력 2019. 01.11. 00:00:00

수도권에 거주하는 40대 김 모씨는 2012년 6월 법원에서 날아든 한 장의 서류를 받는다. 원고는 여동생, 피고는 어머니와 김씨를 포함한 세 명의 오빠였다. 여동생은 오빠들이 침해한 유류분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유류분 소송은 유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들이 법정상속분의 절반이라도 받기 위해 주로 형제 자매에게 내는 소송을 말한다. 1년 간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오빠들이 동생에게 4000만원을 주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오빠들은 조정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부에 판결을 요청했다. 여동생은 오빠들이 생전 증여를 더 많이 받아갔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1년 여뒤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우리는 역사상 형제자매, 부모, 배우자와 법정에서 원피고로 만날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에 살고 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가족 간 소송인 유류분, 상속재산분할 청구, 부양료 심판청구를 보면 2016년 한 해에만 2584건이 제기됐다. 하루 일곱 건 꼴이다. 이혼 소송의 경우엔 한 해 3만 여건 이상 꾸준하다. 유언무효, 명도, 대여금, 사해행위 취소 소송 등 원피고가 가족 간인지 특정이 안 되는 민사소송까지 합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 오늘도 한국의 수많은 가족들은 남남이 될 각오를 하고 법정에서 싸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법원 출입 기자로 일했던 박민제의 '가족끼리 왜 이래'는 이같은 가족 간 소송을 다루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법원에서 선고된 판결문 909건을 분석하고 가족 문제의 원인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진단해 놓았다.

그에 따르면 가족 간 소송의 대표적 사례인 유류분 소송은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현재 재산을 물려주는 70~80대에겐 남아선호, 장자 상속이 당연했지만 그간 딸들의 권리의식은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원고가 딸이고 피고는 아들이 된다.

저자는 "그 어느 드라마, 소설, 영화보다 생생한 실제 사례들이 판결문의 정제된 언어 이면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판결문 안에서 우리 사회 난공불락의 가치였던 가족주의와 혈연주의가 해체되는 생생한 현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아시아. 1만5000원.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