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발로 밟은 현장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다

권행백 소설집 '악어'… 문학상 수상 중편 수록

진선희 기자 / sunny@ihalla.com    입력 2018. 12.21. 00:00:00

그에게 소설은 엉덩이가 아니라 발로 쓰는 작업이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길이나 인물을 묘사하고 나면 어딘지 께름칙하고 써놓은 글에 정이 떨어졌다. 그는 작품 속에 파도 소리를 묘사하려면 직접 해변을 밟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수십 차례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문장 하나를 완성해갔다.

권행백 소설집 '악어'에 실린 3편의 중편은 현장이 낳은 작품들이다. 한의원을 폐업하고 늦깎이로 소설 습작을 시작했고 신춘문예 등 문학공모전에서 미끄러진 일이 수십 회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한국소설' 신인상을 시작으로 줄줄이 문학상을 탔다. 이번 작품집에 묶인 서귀포문학공모전 대상 '바람이 깎은 달',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악어', 소설가라는 이름을 붙여준 등단작 '샤이 레이디'가 그들이다.

'보말 할망'이 등장하는 '바람이 깎은 달'은 제주를 배경으로 썼다. 지난 봄, 그는 제주로 향했고 돌과 바람에 적응하고 중산간 마을을 걸으며 토박이 노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표정을 지닌 달빛은 특히 그를 매혹시켰다. 그 여정이 글감이 되었다. 작가는 오래 바라본 제주에서 마주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소설을 통해 상처받은 자들에게 가족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

표제작 '악어'는 쓰고 또 쓰는 끈질긴 개작 끝에 완성한 소설로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에서 개성공단까지 가닿는다. 악어 가죽을 공급하는 한국 자본의 사업 확대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연과 문명, 자본과 권력의 갈등을 그렸다.

'샤이 레이디'는 미얀마 산 속으로 들어갔던 경험이 모티프가 됐다. 그곳 첩첩산중 승려들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작가는 우연히 다가온 소수 부족 마을이 자본으로부터 비켜선 해방구이길 소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설엔 밀림을 헤매는 내내 "그래서 인류가 더 행복해졌는가 묻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녹아있다.

소설집 말미에는 '소설처럼 사는 법'이란 제목을 단 '작가의 변'을 덧붙였다. 왜 소설을 쓰는가,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참고로, '행백'은 일중독으로 고생했던 그가 '행복한 백수'가 되길 소망하며 그 말을 줄여 지은 필명이다. 아마존의나비. 1만2800원.

진선희기자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