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숱한 최초를 써내려갔던 운주당 할망

우인 고수선 평전 '미래를 걸었던 거인…'

진선희 기자 / sunny@ihalla.com    입력 2018. 12.07. 00:00:00

한국전쟁의 상흔이 여전한 시절, 대한부인회 제주지부장이던 그는 정치에 도전장을 내민다. 1954년 5월 실시된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북제주군 갑구 후보자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에게 후보 사퇴를 종용하고 '정치는 감성적인 여자에게는 부적당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는 유세장을 돌며 "여자가 많은 제주에서, 여자가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상대 후보의 공격을 반박했다. 그는 비록 낙선했지만 제주 여성정치사의 첫장에 오를 만한 일이었다.

우인(又忍) 고수선(1898~1989)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나섰던 그는 최초의 제주출신 여의사였고 제주에서 처음으로 여성단체를 결성했다. 제주도 최초로 모자원과 영아원도 세웠다. 제1회 만덕봉사상 수상자도 그였다.

독립운동가, 의사, 교육가, 사회사업가, 여성운동가 등으로 최초의 기록을 숱하게 써내려갔던 그의 생애를 담은 평전이 나왔다. 문소연 작가가 쓴 '미래를 걸었던 거인 운주당 할망'이다. 우인은 제주의 선각자 중 한 명이지만 젊은 세대에겐 낯선 이름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평전은 그를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작성됐다.

출생지인 작고 낮은 섬 가파도에서 시작된 평전은 시대순으로 따라가며 지난하고 격렬했던 제주 근현대사 속에서 그가 어떻게 당대에 우뚝했던 인물이 되었는지 살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우인이 평생 지주로 삼았던 '애국애족'과 '홍익인간' 정신이 그를 실천으로 이끈 힘이 되었다고 했다.

제주 사람과 사회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공간이던 운주당은 1·4 후퇴 후 귀향한 고수선 가족이 살았던 제주시 일도1동 1109번지 일대 저택을 말한다. 조선시대 제주읍성 동쪽에 있던 관아 운주당과 이웃한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운주당에 정착했을 때 우인의 나이는 54세였다. 운주당에 머무는 32년 동안 우인은 그 안팎을 넘나들며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한글강습소와 무료 조산원 운영에서 예술인 단체인 한국예총제주지회장까지 20여 개 업무를 맡아 수년에서 수십년 씩 그 일을 해냈다. 청년기 같았던 그의 무대가 되어준 운주당터는 최근 복원사업을 통해 다시 살아날 채비를 하고 있다. 제주학연구센터·고수선기념사업회. 비매품. 진선희기자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