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플러스] '다크 투어리즘' 명소

이색 건축 문화기행… 아픔 간직한 건축물을 찾아서

조흥준 기자 / chj@ihalla.com    입력 2018. 12.06. 20:00:00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4·3 등
아픈 역사의 흔적 찾아 떠나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 곳곳에


제주는 유네스코 지정 등 천혜의 자연유산을 갖춘 세계적 관광지 중 한 곳으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척박한 땅을 일구고 묵묵히 지켜왔던 제주인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한적인 인적·물적 교류,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 조건 등 제주인의 삶 그 자체는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자연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적응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또 외세의 억압과 침탈에 대한 항쟁의 흔적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서귀포 건축문화기행'은 제주에서도 특히 서귀포의 아름다운 환경 속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의 뛰어난 가치와 이야기, 제주의 특징을 담아 10개의 테마별로 코스를 분류해 놓았다. 코스마다 제주전통 가옥, 예술가의 집, 역사와 문화를 말하는 건축,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 등 다양하고 풍부한 스토리를 가진 건축자원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하는 제1코스는 다크 투어리즘을 테마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군사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근대건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주 관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한 번쯤은 사회·역사 흔적이 담긴 건축물을 돌아보는 여행은 어떨까.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는 여행을 의미한다. 제주 역사를 언급하면서 전쟁의 상처를 빼놓을 수 없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4·3사건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남긴 군사시설 등의 흔적은 아직도 당시의 아픔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건축기행 1코스는 대정읍을 중심으로 전쟁 시설과 근대 건축물을 돌아볼 수 있게 돼 있다. 군사 시설이 밀집된 모슬포항 주변과 일제 동굴진지, 알뜨르 비행장과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등 보고도 믿기지 않는 방대하고 치밀한 시설물을 둘러보면 제주의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알뜨르비행장 관제탑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와 지하 벙커=알뜨르비행장은 중일전쟁 때 주로 이용되었던 일본해군 공항기지(오오무라 기지)다. 일제는 1926년부터 이곳에 비행장을 짓기 시작해 미군의 공습에 대비한 '결7호' 작전을 위해 1945년까지 80만평으로 비행장 규모를 확장했다. 활주로는 내부 접근이 불가능하지만 관제탑 인근에서 조망할 수 있다.

관제탑은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옆, 지하 벙커로부터 알오름 방향 20~30m 지점에 있는 콘크리트 시설물로 일본군 기록상으로는 석적(石積) 고가수조(물탱크)로 되어 있는데, 현재 모습은 태평양 전쟁 종전 후 개축됐다. 비행장 주변의 들판에 굴이 파인 작은 구릉이 비행기 격납고이다. 1944년 일제가 설계하고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완성한 것으로, 격납고 20기 중 19기가 원형 그대로 남이 있다.

이들은 일명 빨간잠자리라 불린 '아카톰보' 폭격기를 숨겨두기 위한 것으로 2차대전 막바지에 총공세를 위해 만들었다. 격납고가 밀집해 있는 주변과 활주로 사이에는 지하 벙커가 설치돼 있다. 작은 굴과 다르게 내부는 넓고 비행대 지휘소 또는 통신시설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
▷일제 동굴진지와 고사포 진지=송악산에는 60여개소의 크고 작은 진지동굴이 있다. 그 중 송악산 북쪽 사면에는 총길이 1㎞가 넘는 지네발 모양의 동굴 진지가 있다. 동굴의 입구가 23개나 되고 크기는 폭 1~2m, 높이 0.5~1.5m로 셋알오름, 가마오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이다. 또 셋알오름 아래에는 제주에서 가장 큰 일제동굴진지가 있다. 길이 1220m로 입구가 여러 개로 바둑판 모양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트럭이나 차량이 출입할 수 있도록 폭 4m, 높이 5m에 달하는 입구의 굴도 있다.

셋알오름 위에 있는 커다란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고사포 진지이다. 지름 9m, 높이 1.5m로 일제는 이곳에 4개의 고사포를 배치했다. 안쪽 벽에는 가로 1m, 세로 1m, 깊이 70㎝의 탄약을 숨길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다.

남제주 강병대교회
▷남제주 강병대교회·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강병대'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이곳에 세워진 육군 제1훈련소의 이름이다. '강한 병사를 육성한다'는 뜻으로 이 시기의 제2훈련소가 지금의 논산훈련소다. 1952년 건립된 강병대교회는 콘크리트 외벽에 붙은 검은 현무암과 좁은 폭, 뾰족한 탑에서 제주의 지역성 특성과 시대적 배경이 드러난다. 건물의 좁은 폭은 이 시기 군대 막사와 같은 크기이다. 지붕을 올릴 때 군대 막사 표준 규격의 트러스(삼각형이나 오각형으로 얽어 짜서 지붕이나 교량 따위의 도리로 쓰는 구조물)를 올렸기 때문이다. 현재는 공군8546부대의 기지교회로 등록문화재 제38호이다.

구 육군 제1훈련소 일본군 지휘소는 오무라 부대가 남긴 시설물이다. 제주 돌을 쌓고 목조 트러스 지붕틀을 사용하고, 일식 기와를 올린 모습이 일제 시대 전형적인 군사시설 양식으로 이후 슬레이트 지붕으로 변경하였다. 밖에서 보면 좌우 대칭인데 내부는 기능에 따라 공간이 나뉘어있고 특히 화장실이 건물 안에 있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건축물이다.전란기를 비롯해 광복 후 한국군 창설과 훈련상황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유적으로 등록문화재 제409호로 지정돼 있다.

섯알오름에 있는 희생자 추모비와 명예회복진혼비 비석.
▷제주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 터=원래는 일본이 만든 탄약고가 있던 자리로 1945년 일본이 물러가면서 폭파, 섯알오름 남쪽에 두 개의 푹 파진 다이너마이트 자국이 남아있다. 광복 후 제주 전역이 4·3사건에 휩싸이며 양민학살이 이어졌는데, 4·3연루자 252명을 처형했다. 후에 주인을 확인할 수 없는 뼈를 한꺼번에 안장하며 이곳에 희생자 추모비와 명예회복 진혼비라는 비석을 세웠다.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