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미의 하루를 시작하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김경섭 수습기자 / kks@ihalla.com    입력 2018. 11.07. 00:00:00

1989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대입학력고사의 강박에 시달리던 여학생이 결국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는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큰 흥행을 일으켰다. 실화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고 그만큼 공감했던 그 시대의 청소년들은 '그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쳤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코 '행복'과 '성적'을 떼어낼 수 없음을 인정하는 씁쓸한 침묵이 있었다. 벌써 30년 전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매해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공허하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입안에서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기식, 주입식 시험이라는 비판을 받던 학력고사의 대안으로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처음 도입되었다. 처음 수학능력시험의 도입은 신선했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던 학습 문화에서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요구하며 사고와 탐구력을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학교에서는 토론수업과 작문수업이 생겨났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탓일까.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후 사교육 또한 늘어났다. 여전히 개인의 능력은 등급으로 나눠지고 취업을 위한 한 사람의 신뢰는 상당부분 그가 속한 학교가 결정하며 수많은 시험을 바탕으로 인정된 '자격'이 있어야 기회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빠른 시간에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OECD 회원국 중 국가경제력 11위, 고등교육 1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10년째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수치로 본다면 공부도 잘하고 부유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나라인 것이다.

30년 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쳤던 학생은 이제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녀들에게 '공부'는 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답답한 입시지옥을 건너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성세대가 되었으나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이름이 바뀌고 항목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아이들은 '평가'을 위한 '공부'에 대부분의 시간을 저당 잡히고 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스승님이 있다.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마음을 할퀴는 언어들을 쏟아냈던 스승님도 물론 떠오르지만 가장 마음 깊이 새겨진 스승님은 따뜻하게 '괜찮다'를 건네고 진실되게 '너의 꿈이 뭐니'라는 물음을 던져 준 스승님이다. 가장 빛나지만 가장 불안정한 십대. 그 시절의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결과에 상관없이 위로와 응원을 담은 '괜찮다'라는 말과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꿈'에 대한 질문이었던 듯하다.

시험을 치르고 나오던 그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왜 해마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그날이 오면 늦가을 따뜻한 햇살은 어디로 숨어버리는지. 시험장을 나와 바람 매섭고 공기마저 꽁꽁 얼어버린 듯한 추운 거리를 한동안 멍하니 걸었던 기억. 시험을 치르고 나면 숨통이 탁, 트일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던 기억. 오히려 개운하지 않은 마음과 막막함에 더욱 어깨가 옥아들었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면서 금방 툭툭 털어내었던 기억.

11월 15일, 수많은 꽃다운 아이들이 시험장에 들어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들에게 '수고했다' '잘했다' '괜찮다'를 건네주길 바란다. 그래서 가장 건강하고 환한 미소가 머무르는 '그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김윤미 시인>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