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의 백록담] 제주판 '크립토밸리'… 원 지사 첫 정치력 시험대

고대로 기자 / bigroad@ihalla.com    입력 2018. 08.13. 00:00:00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를 '블록체인특구'로 만들어 스위스 추크주와 같은 '크립토밸리'로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제주코인을 발행하고 해외 암호화폐공개(ICO)도 가능한 블록체인 특구는 갑자기 나온 말이 아니다. 원 지사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다른 이슈에 파묻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원 지사가 지난 8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경제일자리정책과 지역과 함께하는 혁신성장회의에서 "블록체인 특구 지정과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정부·제주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면서 다시 이슈로 급부상했다. 원 지사는 "특별자치도인 제주도가 갖고 있는 이점에 섬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묶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규제를 설계하고 시행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글로벌 생태계 육성 추진의 시작점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 지사가 제주판 크립토밸리 조성을 추진하는 이유는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려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세계 블록체인의 성지로 알려진 스위스 추크주 크립토밸리는 2016년 기준 인구 2만9000명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가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특성화로 현재 지중해 연안의 몰타와 같은 세계 금융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크립토밸리는 암호화폐를 뜻하는 'cryptocurrency'와 마을을 의미하는 'valley'의 합성어.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블록체인 기업인 모네타스 창립자 요한 기버가 2014년 추크에 회사를 차리면서 크립토밸리의 기틀이 마련됐다. 이후 블록체인 기반기술기업들이 이곳으로 몰렸고 이달 250여개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전 세계 ICO자금 39억달러(약 4조2000억원)중 40%가 이곳에서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제주를 스위스 추크와 같은 '크립토밸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국내 ICO를 반대하고 있는 정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9일 국내 ICO를 전면 금지했다. 현재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만드는 벤처기업들인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먼저 투자를 받는데 이를 ICO(가상통화공개·initial coin offering)라고 한다. 금융위는 이런 내용이 담긴 유사수신행위규제법 개정안을 만들어 연내 국회를 통과시킬 예정이다. 중앙정부나 국회등 입법기관의 지원이 없는 한 제주판 크립토밸리 설립 시도는 '한 여름밤의 꿈'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 광역단체장들의 치열한 경쟁도 제주판 '크립토밸리'조성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 지방선거에'부산크립토벨리' 조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철우 경북지사도 스위스 주크처럼 블록체인 기술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도 제주가 이겨야 한다.

원 지사를 비롯한 광역단체장들이 너도 나도 블록체인 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크립토밸리의 꿈은 이제 눈 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크립토밸리에 대한 꿈만 있다고 이것이 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제주판 크립토밸리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 당시부터 유치를 추진해 오다가 결국 정치력 부재로 인해 실패로 끝난 '제주역외금융센터'설립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고대로 정치부장>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