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문화예술 공약실천위 최소의 균형마저 잃었다

진선희 기자 / sunny@ihalla.com    입력 2018. 07.02. 00:00:00

지난 4월 2일 저녁 제주도문예회관에 있었다. 4·3 70주년 전야제가 열렸던 날이다. 제주동부경찰서와 마주한 문예회관 앞마당에 특설 무대가 차려졌고 4·3을 기억하려는 춤과 노래가 잇따랐다. 준비한 의자가 모자라 객석 좌우로 겹겹이 모여든 청중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전야제를 찾은 이들은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을 목놓아 부르며 새삼 '달라진 세상'을 실감하는 듯 했다.

현기영 소설가는 '4·3 조상님들을 애도하면서'라는 제목을 단 평화선언문 낭독에서 "4·3의 조상님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했다.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날 무대에 오른 이들이 다 환영을 받은 건 아니었다. 예정된 순서에 따라 전야제 말미쯤 연단으로 향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 청중석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원 지사가 거기에 있어야 하느냐는 식의 거센 항의가 두세 차례 이어졌던 것 같다.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사직을 사퇴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당시 돌발상황이긴 했지만 원 지사에 대한 여론의 일단을 드러내는 일처럼 보였고 훗날 지방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알다시피 제주도민들은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원 지사를 또 다시 택했다. 4년전 비교적 가뿐하게 결승점을 통과하던 때와 비교하면 신승(辛勝)이었기 때문인지 텔레비전으로 본 '당선인' 원 지사의 얼굴은 감격에 겨워 보였다.

그는 당선이 결정된 직후 "위대한 제주도민의 승리"라는 소감을 전했다. 더 겸손하게, 더 도민 속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이겠다는 말도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난 선거 기간에 제시한 공약실천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제주도 도민화합공약실천위원회'가 꾸려졌다. 지난 25일 공식 출범한 공약실천위원회는 8개 분과위원회와 8개 특별위원회 등으로 구성됐다.

원 지사는 언론에 보도된 당선 인터뷰에서 "정당과 진영의 울타리를 넘어 제주의 인재를 포용하겠다"고 했고 공약실천위원회는 '도민화합'이란 문구도 달았다. 하지만 적어도 문화예술체육 분과위원회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무색해진다.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도정의 목표로 내세웠던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문화예술 분야 위원 중에 문화예술단체 관련 인사를 보면 제주예총과 서귀포예총 임원, 제주예총 회원단체장 등 특정 단체에 쏠려있다. 제주문인협회는 전·현직을 포함 3명의 단체장이 이름을 올렸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 교수가 2명 포함된 일도 있다.

제주예총이 제주 예술의 초창기 역사를 일궈온 전통깊은 단체로 위원으로 참여할 자격이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제주지역 양대 문화예술단체인 제주민예총을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명단이 공개된 이후 공약실천위원으로 참여한 예술인마저 제주민예총 회원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왔다고 할 만큼 의아한 구석이 있다. "혹여 지난 선거에서 제주예총과 서귀포예총이 원 지사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던 게 영향을 준 걸까." 여러 추측들이 나온다.

공약실천위원회에 이런 내용을 문의했더니 "그런 줄 몰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공약실천위 관계자의 말처럼 어느 단체에 편중된 걸 모르고 진행했다면 이 역시 허탈하다. 지난 4년간 제주 문화계의 지형을 꼼꼼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어서다. 문화예술위원회 인적 구성은 '균형감'을 잃었지만 부디 공약 실천안은 내실있게 마련되길 바랄 뿐이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