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윤의 백록담] 근로시간 단축… '경우의 수'

조상윤 기자 / sycho@ihalla.com    입력 2018. 06.25. 00:00:00

지구촌이 FIFA 월드컵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대한민국도 2002 한일 월드컵의 영광 등의 영향으로 여름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다. 그러나 2002년을 제외하면 우리 대표팀은 매번 16강 진출과 관련 '경우의 수'라는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축구팬 상당수는 경우의 수를 따지는 전문가(?)로 변신할까. 대한민국은 24일 멕시코와의 예선 조별 2차전에서 1-2로 석패했다. 대회 개막전 스웨덴을 잡고, 멕시코와 비기는 등의 전략이 있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첫 경기인 멕시코와 독일전에 이변이 일어났고, 스웨덴과 멕시코에게 잇따라 패하며 2패를 안게돼 사실상 탈락이다. 하지만 독일이 극적으로 스웨덴을 잡으면서 예상치 않은 경우의 수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미 혹자들은 대한민국이 오는 27일 경기에서 독일을 제압하게 되면 나타나는 경우의 수들을 총정리해 놓은 상태다.

경우의 수는 축구를 비롯한 많은 종목의 시합에 적용된다. 반면 우리사회에 닥친 문제에 대해 '경우의 수'를 예상치 못했거나 경우의 수를 등한시하는 사례가 여전하다. 대표적인게 앞으로 며칠 뒤인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시간제이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주일에 전체 근로시간이 52시간(법정 근로시간 40시간과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을 넘으면 불법이 된다. 노동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꿔 근로자들에게도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주 52시간 근로제도가 6개월간 유예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는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실시하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 6개월간 단속이나 처벌을 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고 제도 연착륙을 위해 6개월간 계도기간(3+3개월), 처벌유예 기간을 두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환영하는 반면 노동계는 정부가 기업편에 섰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처벌 유예로 인해 현장의 혼란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게 업계와 노동계 공통된 인식에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측에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인력난을 해결하는 방안이 근본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보진영과 노동계의 반발도 이어졌다. 정의당은 이정미 대표는 지난 21일 "시행 열흘을 앞두고 갑자기 계도 기간을 꺼낸 것은 정부가 법 시행 준비를 태만히 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에서는 임금보전 대책이 미흡한 상황에서 계도기간이 산업현장의 혼란을 줄이기보다 노사갈등만 촉발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노동자들의 임금 감소 가능성 역시 논란거리일 수 밖에 없다. 일주일에 12시간 이상의 연장 근로는 제한됨에 따라 12시간 이상의 근로 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휴일이나 야간 근무가 많은 직종의 노동자는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가 예견됐기 때문에 정부측은 당연히 경우의 수를 따졌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재계는 물론 노동계에서 우려하는 부분을 예상했다면 충분히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처벌유예가 아니라 제도의 연착륙을 위한 최대한의 경우의 수를 감안해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했다. 시쳇말로 먹고살만한 여유는 없는데 쉴 수 있는 시간만 주거나, 근로수당으로 노동자들을 옥죄게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의 바뀌는 속도만큼 정부의 대응속도도 일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기업도 근로자도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조상윤 경제산업부국장>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