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제주지사 후보 문화 공약, 이게 최선입니까

진선희 기자 / sunny@ihalla.com    입력 2018. 06.11. 00:00:00

애초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5대 공약'에 문화를 다루지 않았다. 민선 6기 제주도정을 이끌며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를 목표로 내걸었던 이 마저 핵심 공약에서 문화를 외면했다. 6·13지방선거에 나선 제주도지사 후보들의 문화 공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선거일이 가까워지자 여론조사 선두권을 달리는 후보를 중심으로 문화 분야 공약을 별도로 내놓았다. 그들은 새로운 건물을 짓기 보다 마을의 기억을 품은 유휴시설을 활용한 문화 시설을 가꾸겠다는 공약에 힘을 줬다. 생활문화예술 활성화에도 공을 들였다.

하지만 공약 대부분이 문화예술 분야에 쏠려있고 제주 역사·전통에 기반한 문화공약은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더욱이 일부 후보는 이미 추진중인 사업을 새로운 공약처럼 제시하는 등 유권자를 헷갈리게 한다.

제주문학관 건립이 대표적 사례다. 제주문학관은 이미 지난 3월 제주도와 제주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가 제주한라도서관 사거리 동쪽 제주시 연북로 도로 옆에 있는 도남동 3172㎡ 규모 공유지를 부지로 확정하고 후속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말까지 실시설계 용역을 마치고 내년부터 공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해당 후보 측은 제주문학관을 주변의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덧붙였다. 연북로 일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대상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라는 점에서 제주문학관 건립 추진 상황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데서 벌어진 일로 보인다.

두 명의 후보가 공히 거론한 제주예술인회관 공약도 논란거리다. 제주문예재단이 100억원대 예산을 들여 제주시 원도심 '재밋섬'을 매입해 조성하려는 가칭 '한짓골 제주아트플랫폼'에 제주예술인회관 기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제주문예재단은 건립 타당성을 알리며 광역문화재단들이 청사를 문화예술인회관으로 공유한다고 했다. 제주예총과 제주민예총도 지난달 공동 성명을 발표해 "두 단체가 오랫동안 제주예술인회관 건립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는데 '재밋섬' 건물 매입은 이러한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일각의 반발을 잠재우는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물론 이 공약에서 한 후보는 제주예술인회관이 도내 554개에 이르는 문화예술단체의 단순 사무공간이 아니라 창작과 문화 향유가 공존하는 복합창의공간으로 쓰일 거라고 설명했다. 제주도민과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공간이 늘어나는 점을 반길 일이겠지만 뒤이어 "원도심 유휴공간을 활용함으로써 원도시 활성화 정책과 연계해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대목 에 이르면 '한짓골 제주아트플랫폼'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얼마만한 차별성이 있는가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뒤늦게 터져나온 이들 문화 관련 공약이 실망감만 주는 건 아니다. 기관장에 국한된 개방형 직위 공모 대상을 실무진으로 확대하거나 공립 문화공간의 민간 위탁은 지역 문화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공약이다. 국립방언연구원 설치, 제주도립국악단 창단 등은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다지고 문화 다양성을 키우는 공약으로 주목을 끈다.

문화 공약에 늘 새로움만 필요하진 않다. 유휴 시설을 돌아보듯 도내 곳곳 흩어진 기존 공간이나 인력을 보듬는 작업에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 어느 후보의 공약처럼, 동네마다 경쟁하듯 세워진 문화의집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일, 문화 공공기관 젊은 종사자들의 처지를 살피는 일에서 첫 걸음을 떼어놓아도 된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