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핫플레이스] (18) 한경면 저지리

빗물 머금은 백서향 향기 곶자왈 가득 메워

표성준 기자 / sjpyo@ihalla.com    입력 2018. 03.01. 20:00:00

꽃을 활짝 피운 제주시 한경면 저지곶자왈의 백서향 군락.
주민들 '저지 제주백서향군락 보호지역' 지정
산림청 명품숲 이어 환경부 생태관광지역 선정
자연에 독특한 문화적 경관 어우러진 예술마을


제주 곶자왈에 향기와 품격을 더해주는 백서향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때마침 제주 전역에 내린 많은 비와 함께 기온도 크게 올라 이번 주말에는 활짝 핀 백서향을 만날 수 있는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향기가 천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천리향이라고도 불리는 백서향이 지금 제주의 곶자왈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저지곶자왈

과거 제주에선 곶자왈뿐만 아니라 오름 등지에서도 백서향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보리색 꽃잎과 진한 향기에 매혹된 사람들이 무차별 뽑아가는 바람에 지금은 제주시 조천읍과 한경면 중산간의 곶자왈 등지에 드물게 분포하고 있다. 한경면주민자치위원회와 저지마을회는 제주도기념물 제18호인 백서향을 보호하기 위해 저지곶자왈에 '저지 제주백서향 군락 보호지역'을 지정해놓고 있다.

제주관광공사는 지난해 4월 가볼만한 곳으로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을 선정하면서 그 이유를 '사랑을 부르는 백서향'이 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지 백서향 군락이 있는 저지리 명이동은 한경면 용수리 절부암 전설의 두 주인공(강씨 총각과 고씨 처녀) 중 고씨 처녀의 고향이다. 향기 가득한 꽃 자체의 품격과 절절한 사랑을 하다 숨진 여인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백서향 군락이 바로 이곳이다.

저지 백서향 군락은 문도지오름으로 또는 문도지오름에서부터 이어지는 올레코스에 속해 있기도 하다. 김대윤 저지리장이 길잡이로 나선 곶자왈로 들어서니 지천에 백서향이 뿌리내려 가히 군락지라 할 만했다. 아직은 수줍은 듯 앙증하기만한 꽃망울을 살짝 올린 모습이지만 3월 초쯤이면 활짝 피울 것으로 보인다.

"저지리곶자왈의 백서향은 눈 내릴 때 꽃망울이 올라와서 2월 하순쯤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3월이면 만개해 5월까지 곶자왈 가득 향기를 채워준답니다."

김대윤 이장의 설명에 따르면 저지리 일대에는 곶자왈뿐만 아니라 저지오름 등지에도 백서향과 춘란 등 지금은 희귀종이라 부르는 식물들이 흔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 군락지로 들어서는 곶자왈 입구에 다음과 같은 경고문을 붙여놓았다. '불법 채취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습니다.' 저지곶자왈은 국립산림과학원이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백서향과 같은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을 보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지오름

환경부는 지난 1월 24일 저지곶자왈과 오름을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했다.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의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생태관광지역이 제주에 지정된 것은 동백동산습지(선흘1리)와 효돈천·하례리에 이어 세번째다.

제주 최대 규모의 곶자왈이라는 저지곶자왈의 생태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저지오름도 명품숲으로 알려진 지 오래다. 지난 2007년 산림청 등이 주관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환경부는 이번 생태관광지역 지정을 통해 저지오름 일대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 친화적 생태관광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저지리는 이미 저지오름 정비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재선충 작업을 하면서 파헤쳐진 숲을 복원하고, 오름 정상에는 동서남북에 전망대도 설치할 예정이다.

거창한 구조물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빽빽이 들어서버려 시야를 가리는 소나무 등을 가지치기 수준에서 정비해 오름 정상에 오르면 저지리 일대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 이장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명품오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미 전국에 명품숲으로 알려져 있어서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좋겠지만 오름을 오름답게 손질할 필요가 있어서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저지리는 3개년 계획을 세워 오름을 가꾸기 위한 예산도 확보해 놓고 있다. 숲을 자연적인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주안점을 두면서도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고 보존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저지오름의 남다른 경관은 저지오름 북서쪽 비탈에 자리한 공동묘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주 오름의 공동묘지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산담' 덕분에 독특한 문화적 경관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저지오름 공동묘지의 산담은 자연석 돌담이 아니라 대부분 콘크리트벽이다. 대신 비석은 가공석이 아니라 주변에 굴러다니던 천연석을 이용해 '李' 등 성씨만 써놓은 것도 있다. 이창훈 제주동자석연구소장은 "공동묘지 안에는 산담으로 쓸 잡석을 구하기 어려워 블록에 시멘트를 덧대 산담을 만드는 경우가 있지만 이곳처럼 자연석에 성씨만 써놓은 비석을 세우는 일은 흔치 않다"며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급하게 묘를 꾸미다 보니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적 경관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저지리는 마을 홈페이지(http://jeoji.invil.org)를 통해 예술이 살아 숨쉬는 저지예술마을이라 홍보하고 있다. 제주도내외 유명 예술인들이 입주한 문화예술인마을이 조성돼 있으며, 제주현대미술관도 지난 2007년 개관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저지리는 지난해 마을 해설사 6명을 양성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 등에게 마을과 오름, 곶자왈 등에 대한 해설을 서비스하고 있다. 해설 서비스를 받으려면 저지리사무소(741-2231)에 신청하면 된다.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