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10)영실 입구 표고밭~민모루오름~옛표고밭길~한라산둘레길~중문천변~한전길~숲길~거린사슴오름~전망대

숲에선 여유와 사색… 하천에선 동심과 추억에 젖어

조흥준 기자 / chj@ihalla.com    입력 2017. 09.07. 00:00:00

중문천을 따라 걷고 있는 탐방객들. 강희만기자
늦여름, 가을을 먼저 맞이하는 숲과 천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여행 코스
비교적 평탄한 길 가벼운 산행으로 적절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며,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여름철 탁 트인 바닷가를 찾는 것도 무더위를 피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지만, 자연과 숲이 주는 그늘 속에서 서늘한 바람과 더불어 사색에 잠겨보는 것 또한 여유로움은 물론 마음마저 챙길 수 있는 괜찮은 피서법이 아닐까.

지난달 26일 한라일보의 열 번째 에코투어가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지 40여 분. 내리자마자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 8월이었지만 누가 봐도 산행하기에 딱 좋은 맑은 가을 날씨였다.

출발지인 영실 입구 맞은편 표고밭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풀냄새가 탐방객들을 반겼다. 전날까지 내린 비 때문인지 수분을 먹은 흙길이 더욱 부드럽게 느껴졌다. 숲 분위기에 취해 걷기 시작한 지 한 식경이 채 안 되어 도착한 곳이 민모루오름 정상. 밋밋한 형세에 철탑이 세워진 평탄한 정상인지라 의아해하는 탐방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평지만 걸었는데 정상이라고요?", "이렇게 얕은데 민모루오름이 족보에 있기는 한 오름입니까?"

길잡이로 나선 이권성 제주트레킹연구소장은 "능선 탓에 오르는 것 같지 않게 느껴지지만 아래에서 보면 80m가 넘는 높이를 가진 360여 개의 오름 중 하나가 맞다"면서 "이번 코스는 높은 곳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가기 때문에 비교적 길이 평탄하다"고 설명해 주었다.

민모루오름 정상에서 탐방객들이 이권성 소장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역시나, 다시 시작된 낯선 여정은 오르지 않고 내려가는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버섯 재배지 주변답게 산행로 주위로 접시껄껄이그물버섯 등 다양한 버섯들이 탐방객들의 눈을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고, 나무 틈새로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은 아직 여름이라는 시간조차 잊게끔 만들어 주었다.

탐방객들과 중문천을 따라 흐르는 물.
한 탐방객은 "굴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면서 "에코투어는 사람이 안 다니는 길을 찾고, 흙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고, 숲속을 걷는다"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평소와 다르게 탐방객들 또한 대화보다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숲이 주는 여유로움과 사색을 만끽하는 듯했다.

둘레길을 따라 한 시간쯤 걷다 보니 중문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라고 했는데, 며칠 새 내린 비 때문인지 제법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어진 물줄기가 천제연 폭포를 거쳐 바닷가에서 끝을 맺는다. 숲에선 바람이 더위를 달래주었다면 중문천에선 흐르는 물이 시원함을 더해 주었다. 건천이 많은 제주에선 흐르는 물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곳곳에서 솟는 샘물을 보면서 탐방객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한 모금 떠먹어보니 '약수'라는 말이 절로 새어 나왔다.

숲이 고요함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다면 중문천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서로 어울리며 남을 돌아보게 하는 여정이었다. 탐방객들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사진도 찍어주고, 서로 잡아주고 기다려주며 더욱 친근해졌다.

특히 걷는 와중에 절구 빻는 듯한 ‘달그락, 딱딱’하는 소리가 곧잘 들리곤 했는데 납작한 돌을 잘못 밟아 돌끼리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이권성 소장은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선 납작한 돌을 많이 볼 수 있다"며 "예전 같았으면 구들장으로 많이 쓰여서 너도나도 집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노란대광대버섯, 제주쓴맛그물버섯, 모시대.
삼겹살을 굽기 좋은 불판 같은 돌을 보니 시장기가 더했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추억이 담긴 옛 이야기를 겯들인 점심을 함께 먹은 뒤, 마지막 지점인 거린사슴오름으로 향했다. 드디어 시작된 오르막 코스였지만 전체적으로 경사가 심하진 않았고, 그마저도 천천히 걸은 탓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전체를 보려면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한다’고, 오름에 크고 작은 몇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들었지만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지라 봉우리의 크기와 위치가 가늠이 잘 되진 않았다. 그래도 오름이름의 유래가 갈라졌다는 뜻에서 '거린' 혹은 등성이가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거린사슴'으로 불린다는 설명과 함께 정상에선 서귀포 전경이 보인다는 말에 한껏 기대감을 품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빽빽한 삼나무를 비롯해 담쟁이와 덤불들이 끝까지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는 덕분에 그야말로 숲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접시껄껄이그물 버섯.
이날 친구와 함께 에코투어에 참가한 현양순(52·제주시 일도2동)씨는 "익숙한 듯 낯선 코스가 산행을 즐겁게 해주고, 적절한 걸음 속도와 코스 난이도가 산행 초보자도 참가하기에 참 좋다"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하루를 보내기에 최적의 여행 코스"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친구 추천으로 에코투어에 참가하게 됐는데 올 때마다 너무 마음에 들어 이제는 내가 먼저 평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들을 추천해 같이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름 정상에 있을 줄 알았던 전망대는 사실 오름을 내려와서야 있었다. 서귀포 시내는 물론 날씨가 좋은 날은 마라도를 포함해 8개의 섬을 모두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전망대에 도착해 전경을 보고 난 뒤에야 우리가 지나온 고지가 꽤 높았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