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로 가는 길 제주의 준비와 대응은](7)[제2부. 고령사회 충격… 제주는-(4)갈 곳 없는 노인들]

"TV 시청이 전부… 여가활동 마음뿐"

김지은 기자 / jieun@ihalla.com    입력 2017. 06.01. 00:00:00

도내 노인 10명 중 8명 취미·여가 활동 희망 불구
지난 2년간 실제적 활동 대부분 'TV 시청'이 전부

"퇴직하고 나선 많이 우울했어요. 규칙적이던 생활이 달라지니 그럴 법도 하죠." 지난 25일 제주특별자치도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박정애(69)씨가 말했다. 2010년 교단을 떠나고 바뀐 일상은 그만큼 낯설었다.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랬던 그에게 삶의 활력을 찾아준 것은 '악기'였다. "친구를 통해 노인복지관을 알게 됐다"는 그는 오카리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에겐 악보를 보는 일도 친숙했다.

배울수록 관심사는 넓어졌다. 4년 전부턴 색소폰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월·수·금요일은 색소폰과 플루트, 화·목요일은 기타를 배우고 있다"며 "아침을 먹고 복지관에 오는 게 일상이 됐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웃었다.

안덕만(68)씨도 1년 전부터 색소폰을 손에 들었다. 은퇴한 뒤 즐겁게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다가 색소폰 초급반에 등록했다. 악기는 직접 준비해야 했지만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어 부담이 적었다. 그는 "개인 교습을 받으면 30만원이 들어가지만 복지관에선 무료로 받을 수 있다"며 "여기에선 노인들도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색소폰 초급반에는 이들과 함께 20명이 활동하고 있다. 매주 3일, 하루 1시간씩 악기 다루는 법을 배운다. 배움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를 통해 모두가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취미여가활동 하고 싶지만…"= 하지만 대다수 노인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취미나 여가 활동을 하고 싶어도 그저 마음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이러한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4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제주지역 노인 10명 중 8명 가량이 취미여가활동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취미여가활동 희망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120명)의 79.2%(95명)가 '반드시 하고 싶다'(7.5%), '될 수 있으면 하고 싶다'(44.2%), '기회가 되면 할 생각이 있다'(27.5%)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의 여가·문화 활동은 TV 시청에 집중됐다. 모든 응답자(120명)가 지난 1년간 여가·문화 활동을 했다고 답했지만 이들이 지난 2년간 참여한 활동 1순위는 TV 시청(89.3%)이었다. 취미오락활동(4.9%), 휴식활동(3.3%), 문화예술활동·스포츠참여활동·그 외 사회활동(각각 0.8%)에 참여한 인원은 극히 적었다.

도내 노인들의 사회·여가·문화 활동에 대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같은 조사에서 '현재 사회·여가·문화 활동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118명)의 31.4%가 '매우 만족'하거나 '만족한다'고 답했다. 전혀 만족하지 않거나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이보다 조금 더 높은 34.7%였다.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다양한 여가문화 욕구 충족 한계"

도내 노인여가시설 457곳…늘어나는 수요 감당 못해

다양한 욕구 충족도 미미
노인복지관·경로당 확충 등 전담 교육기관 필요 목소리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노인여가복지시설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노인 세대에겐 여가가 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만큼 건강한 노후를 지원하기 위해선 관련 시설의 운영 활성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도내 노인여가복지시설은 그 수만 놓고 본다면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다양해지는 노인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부에선 노인 세대를 위한 전담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낸다.

지난달 25일 제주특별자치도 노인복지관의 지하 연습실에서 색소폰 초급반 수강생들이 저마다 악기를 들고 연습하고 있다. 배움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를 통해 모두가 삶의 활력을 찾고 있다. 강경민기자
노인여가복지시설은 크게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교실로 나뉜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현재 도내에는 457곳의 시설이 운영 중이다. 노인복지관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한 곳씩 자리해 있고 노인교실(노인대학·대학원 포함)은 28곳, 경로당은 427곳이다. 경로당만 보면 도내 마을 234곳(법정동 62곳·행정리 172곳)에 적어도 한 곳 이상이 운영되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 이들 시설의 프로그램 운영비로 25억7300만원을 투입한다.

이 중에서도 노인복지관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비교적 다양하다.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제주도 노인복지관에선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카리나, 기타, 플루트 같은 악기 교육을 비롯해 영어·일본어 등 외국어 교육이 이어진다. 왈츠·탱고와 댄스스포츠, 요가, 에어로빅, 난타, 합창, 무용 등도 한 곳에서 배울 수 있다. 만 60세 이상은 한 달에 회비 1만원만 내면 이러한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용자들은 부담 없이 다양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드러낸다. 이는 노인 세대의 여가문화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노인복지관 이용자인 고익붕(85)씨는 "지금까지 들었던 일본어, 영어, 실버 댄스 교실 모두 좋았다"며 "다른 곳도 알아봤지만 복지관만큼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또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수요 느는데… 공간은 협소=하지만 시설 규모가 한정돼 있다 보니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2010년 문을 열 때만 해도 150명이 찾았지만 지금은 그 수가 460명을 웃돈다. 규모 면에선 체육시설 1층이 증축된 것 외에 별반 달라지지 않아, 이용 인원을 늘리는 데 한계가 따른다. 그러다 보니 운동 프로그램 같은 인기 강좌는 경쟁률이 5대 1에 달한다.

제주특별자치도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간·요일별로 세분화하면서 가능한 많은 인원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더 많은 어르신들이 이용하도록 홍보하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막 은퇴한 어르신들은 경로당을 이용하는 게 편치 않기 때문에 맞춤형 교육이 진행되는 기관을 찾는다"며 "하지만 노인복지법 상의 노인인 65세 이상도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보니 예비 노인 세대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서귀포시 노인복지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상 3층에 연면적 988.77㎡ 규모로 지어졌지만 공간이 협소해 체육시설이 들어서지 못했다. 이 때문에 개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증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 세대가 노인 인구로 진입하는 시기에는 여가복지시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욕구가 더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경로당 역할 확대·전담 교육기관 필요=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선 '경로당의 역할 확대'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경로당광역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도내 경로당에 치매예방, 노래교실, 원예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한 탓에 경로당마다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현재 전문가로 활동하는 인원은 100여명으로 도내 경로당 수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 노인들의 적성에 맞는 프로그램이 공급되기 위해선 전문 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인 세대를 위한 전담 교육 기관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의미 있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평생 학습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은 곧 자격 취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노인 세대의 경제활동을 돕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

대한노인회 제주도연합회 홍관일 사무처장은 "현재는 노인 대학원 3년 과정을 마치면 또 다른 전문 교육기관이 없어 더 배우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며 "노인들이 평생 동안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시영 선임기자, 김지은·송은범·양영전기자, 고령사회연구센터=고승한 박사, 이서연 전문연구원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