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로 가는 길 제주의 준비와 대응은](6)[제2부. 고령사회 충격… 제주는-(3)기댈 곳 없는 노인들]

"부양 부담이 학대로… 지원 확대 절실"

송은범 기자 / seb1119@ihalla.com    입력 2017. 05.31. 00:00:00

도내 노인 학대 매년 증가세
2014년 69건서 지난해 81건
10건 중 9건은 가정서 발생
국가 차원 지원 확대 나서야

뇌병변 장애로 뇌전증을 앓고 있는 김모(75) 할머니에게 지난 1년은 씻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남았다. 아들과 경제적 문제로 갈등하던 며느리는 모든 화를 김 할머니에게 쏟아냈다. 평소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폭언을 일삼았고, 남편과 싸운 날은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이 과정에서 넘어진 김 할머니는 흉추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지만, 아내가 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있어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다행히 학대 사실을 확인한 경찰이 제주도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한 뒤에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제주에서 발생하는 노인 학대가 해마다 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학대 건수는 2014년 69건에서 2015년 72건, 2016년 81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는 4월말까지 16건이 접수됐다. 노인 학대와 관련된 상담도 2014년 2589건에서 2015년 2480건, 2016년 2608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노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학대를 당했다. 신고 현황을 보면 폭언이나 모욕을 주는 정서적 학대(39.6%)와 폭력을 행사하는 신체적 학대(37.1%)가 가장 많았다. 이어 방임(17%), 경제적 학대(5.1%)가 뒤를 이었다.

▶학대 가해자 '가족'… 신고 꺼려= 주변의 신고로 학대에서 벗어난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노인 학대 대부분이 가정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도내 노인학대 현황' 자료에 따르면 노인학대 발생장소는 '가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최근 3년간 접수된 노인학대 222건의 90%(200건)가 집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학대 가해자 역시 아들(40.3%), 배우자(19.7%), 딸(8.3%) 순이었다.

대부분의 노인 학대가 가정에서 발생하다 보니 은폐되기도 쉽다. 학대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제주도 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노인 학대 81건 중 1회에 그친 경우는 20.9%(17건)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1년 이상 이어졌으며, 5년 이상도 32%(26건)나 됐다.

전문가들은 제주지역 특성상 학대가 발생해도 피해자 스스로가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례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선희 제주도 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부양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학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부양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요양서비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일·간병 병행 힘들어… 커지는 돌봄 부담"

제한된 재가 서비스 보호자 공백 채우기 역부족
과도한 노인부양 책임 노인학대로 이어질 우려도

가족실태 명확히 파악하고 지원할 제도적 정비 필요

▶부족한 요양서비스=정부는 장기요양보호 대상 노인을 돌보는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누구나 납부하는 장기요양보험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쓰인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동시에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가입된다.

핵가족·고령화 시대, 장기요양보호노인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강경민기자
수급 대상자는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이라도 치매·뇌혈관성 질환·파킨슨 병 등 노인성 질병을 앓는 사람이다. 상태에 따라 1~5등급이 매겨지고 이에 따라 수급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종류와 범위가 달라진다. 급여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요양시설 등에 입소하면 지원되는 시설급여와 보호사가 직접 집을 방문해 목욕이나 식사 등을 도와주는 재가급여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는 재가 서비스는 하루 최대 4시간만 이용할 수 있어 직장을 가진 보호자가 남은 공백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24시간 방문 요양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지만 연간 6회로 제한된다.

▶요양 서비스 질 하락 우려=노인요양 시설로 지급되는 시설급여는 눈 먼 돈이 되기 십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전국 장기요양기관 1028곳을 골라 현지 조사를 한 결과 이중 75.3%인 774곳에서 총 235억 원의 요양급여비용을 부당 청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건강보험에서공단에서는 장기요양급여의 부당청구나 거짓청구를 막기 위해 해당 기관의 명단을 공표하거나 신고포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요양기관의 서비스 질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되고 있다.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선 요양기관의 서비스 질 향상도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제주도내 장기요양기관 평가 결과를 보면 최우수 등급인 A등급을 받은 시설은 16.8%에 머물렀다. 최하위권인 D·E 등급이 37.5%에 달했다.

▶혼자 모시기엔 열악한 현실=현실이 이렇다면 그냥 내가 모시고 말지라고 생각하지만 간병과 직장을 동시에 병행할 방법이 없다. 가족(부모·배우자·자녀·배우자의 부모)의 질병이나 사고, 노령으로 돌봄이 필요할 경우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연간 90일까지 휴직을 부여하는 '가족돌봄휴직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 사용률은 미비한 수준이다. 또 근로자가 무리해 돌봄휴직을 신청했다고 해도 휴직 기간 동안은 무급으로 지내야 한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 관계자는 "가족돌봄휴직제도가 시행된 이후 센터에 접수·상담된 사례는 전무한 상태"라면서 "근로자가 해당 제도가 존재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 아직까지 실질적인 활용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현행 가족돌봄휴직제도를 30일까지 유급으로 전환하고, 사유 대상에 손자녀를 포함시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곧 닥칠 위기=정부 혹은 지자체의 적절한 제도적 지원 없이 가족에게만 의존하는 노인 부양은 자칫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개인 혹은 가족의 과도한 노인부양 책임은 부양자의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높이는 원인이 되며 이는 간혹 장기요양대상노인에 대한 학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에선 가족 구성원이 늙고 병든 배우자나 부모를 오랜 기간 홀로 간병하면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개호(간병) 살인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 8월까지 개호 살인사건 179건이 발생해 189명이 숨졌다.

일본의 사례는 고령사회로 막 진입한 제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6년 말 기준 제주 총 인구의 13.47%(8만 6452명)를 차지하는 거대한 인구집단인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차츰 노년 세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세대의 경우 자녀가 한 두 명에 불과해 자녀 세대에게 부양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핵가족화와 같은 가족구조의 변화로 자녀보다는 배우자 간 돌봄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이 경우 노인을 돌보는 배우자 역시 연령이 높아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장기요양보호노인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특별취재팀=강시영 선임기자, 김지은·송은범·양영전기자, 고령사회연구센터=고승한 박사, 이서연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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