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로 가는 길 제주의 준비와 대응은](4) [제2부. 고령사회 충격… 제주는-(1)일할 곳 없는 노인]

일해도 가난… 노인 빈곤 '악순환'

김지은 기자 / jieun@ihalla.com    입력 2017. 05.29. 00:00:00

2015년 우리나라 노인 소득시장 빈곤율 61.7%
공공 부문 노인 일자리 저임금·단순 노무 그쳐

"숨 떨어지기 전에는 일해야지요." 지난 23일 제주시 삼도동에서 만난 장모(79)씨는 한 주민이 건넨 폐지를 리어카에 쌓으며 이렇게 말했다. 세 발 오토바이에 매달린 리어카에는 장씨가 반나절 골목을 누비며 주운 폐지가 가득했다.

그가 폐지 줍는 일로 손에 쥐는 돈은 월 20여만원 남짓. 여기에 나라에서 주는 기초연금 등 30여만원을 보태 한 달을 산다. 최근에는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크게 아팠지만 이렇게라도 일해야 마음이 편하다. 장씨는 "밥 먹고 전기료 내고 하려면 일해야 한다"며 "자식도 저 생활이 있는데 기댈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은 고령사회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노인 빈곤' 문제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 절반 이상이 가난에 허덕이지만 일할 곳은 한정돼 있고 사회적 안전망은 헐겁다.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시장소득 빈곤율은 61.7%에 달한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1년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다. 노인 빈곤율은 2011년 60.7%에서 2013년 59.8%로 낮아졌지만 2014년 60.2%에서 2년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빈곤율은 중위소득(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값)의 50% 미만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시장소득 빈곤율이 높은 것은 노인들이 일해서 번 돈만으로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 빈곤의 해법으로 일자리가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인 일자리 늘어나는데…= 노인 일자리 수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공급된 공공부문 일자리는 2013년 3939개, 2014년 4723개, 2015년 5645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그 수가 한 해 전보다 33% 증가한 7513개였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투입된 예산도 2013년 70억500만원에서 2016년 122억1900만원으로 74% 이상 급증했다.

넉넉지 않은 노인들에게 공공 일자리는 일종의 '버팀목'이다. 나이가 들수록 불러주는 곳이 줄어들고,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제한적인 탓이다. 농사를 그만 둔 뒤 5년 전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는 이모(83)씨는 "일흔이 넘으면 다른 데선 잘 써주지 않고 괜히 폐를 끼칠까봐 일을 받기도 어렵다"며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저임금, 단순 노무에 치중돼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올해 제주에선 이달 기준 총 48개 사업에 노인 일자리 6919개가 공급됐는데 이 중 65%가 월 10회, 하루 3시간 근무하는 '공익활동'이다. 활동 내용은 초등학교 인성교육, 보육교사 도우미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환경 정비 등의 비중이 높다. 수당은 노인 일자리 사업이 시작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월 20만원에 그치다 올해 들어 2만원 인상됐다. 하지만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현모(80)씨는 "고혈압, 고지혈증으로 한 달에 약값으로 나가는 돈이 정해져 있는데, 다른 곳이 안 좋거나 무릎 연골 주사라도 맞을 때면 10여만원이 들어간다"며 "기초연금(20만원)과 수당을 더해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선 민간 영역의 일자리 창출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3월 제주학생문화원에서 열린 '2017 제주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 발대식'. 사진=한라일보 DB


"민간부문 노인 일자리 확대로 질 높여야"

정부 재정 투입 한계… 시장형 일자리 등 확대
민간 기업 채용 활성화 위한 제도적 장치 필요

정년 이후 계속 고용제도 중장기 과제로 검토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노인 일자리 수당을 현행 22만원에서 40만원까지 인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노인 빈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지원책의 하나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 투입도 한계가 있는 만큼 시장형 일자리 확대, 민간 차원의 일자리 창출 등으로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제공은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과도 직결되는 과제다.

▶지식·경험 살리는 일자리 확대= "중국인 관광객이 많을 때는 작년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이 되기도 했어요. 수익금은 공과금, 물건 값 등을 빼고 근무한 시간으로 나눠 가지게 되죠." 강정순(67)씨는 서귀포 천제연폭포 입구에 자리한 매장 '놀멍쉬멍'으로 출근한다. 노인사회활동 전담기관인 서귀포시니어클럽이 2013년 문을 연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장이다.

현재 이곳에는 팀장인 강씨를 포함해 23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2명씩 조를 이뤄 매장 내 카페테리아, 토산품 판매점, 식당을 나눠 맡는다. 근무 시간은 주 1~2회, 하루 7시간 정도인데, 보수는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한 달 수익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공익형 일자리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강씨는 "적게는 40~50만원, 장사가 잘 될 때는 1인 당 100만원까지 받는다"고 했다.

시장형 일자리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만족도가 높다. 은퇴 후 설 곳이 좁아지는 노인들에겐 일하는 기쁨이 큰 힘이다. 이 때문에 사회 구성원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측면에서도 노인 일자리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씨는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5년 전 카페테리아가 오픈할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라고 말했다.

▶고령자친화기업 육성 등 필요= 노인들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선 시장형 일자리 확대, 고령자친화기업 육성 등이 필수적이다. 공공을 넘어 민간 영역에서의 노인 일자리 창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부터 직원 대다수가 만 60세 이상으로 구성된 기업을 만들면 최대 3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하는 고령자친화기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 97곳이 설립됐지만 제주에는 아직 한 곳도 없다. 그나마 서귀포시니어클럽이 시장형 일자리 사업으로 올해 공모에 신청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도내 첫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노인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선 민간 기업의 채용을 활성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경화 대한노인회 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장은 "정부나 지자체가 각급 공공기관이나 일정 규모의 개인 사업장에 노인 고용을 의무화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를 마련해 추진한다면 취업률은 훨씬 높아질 거라고 판단한다"며 "취업을 통해 소득을 보장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하면 행복지수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정부가 정년 이후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도내 기업체의 노인 일자리 현황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고 고령자 인력 수요처를 확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선 가칭 '광역노인일자리센터'를 개설해 각 부문·지역·계층별로 일자리, 교육에 대한 효율적인 추진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별취재팀=강시영 선임기자, 김지은·송은범·양영전기자, 고령사회연구센터=고승한 박사, 이서연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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